닥터의 눈-인성회복을 위하여

입력 2003-04-15 09:13:19

어느 날 우연히 한 무리의 학생들 뒤를 따라 걷는데 이들의 대화가 시종일관 욕이었다.

심지어 부모와 선생님들을 지칭하는 말조차 공개하기 곤란할 정도의 속된 언어였다.

언젠가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두세 가족이 모인 것 같았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들간의 이야기가 온통 욕설투성이었다.

어린이가 커가면서 부모를 통해 보고 듣고 배우고 흉내내며 닮아가는 과정을 '동일화(同一化)'라고 일컫는다.

동일화의 과정은 성격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자아와 초자아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철없는 아이가 어른스럽게 되고 양심과 도덕심을 갖추어가며 이상을 펼치게 된다.

반면 어린이가 본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를 '적대적 동일화(敵對的 同一化)'라고 한다.

소년범죄가 이런 과정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도깨비 장난에서 '내가 도깨비다'하면서 어린이 자신을 공격자인 도깨비와 동일화하여 도깨비를 무서워하지 않는 심리를 '공격자(攻擊者)와의 동일화'라 부른다.

말하자면 자기를 괴롭히고 공격한 사람을 미워하면서 무의식중에 닮아가는 심리도 여기에 해당된다.

바로 위의 두 가지는 대체로 부정적 동일화 현상에 속한다.

요즘 우리 가정과 사회는 부정적 동일화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할 수 있다.

사회환경도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말과 행동이 무례함을 지나쳐 공격적인 경우를 자주 본다.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노라면 역시 공격적인 언어와 난폭한 장면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인터넷의 폐해도 걱정스럽다.

소아나 청소년들이 쉽게 빠져들 유해한 내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자유·민주, 혹은 정의의 기치를 내거는 집단은 많아지는데 사회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가정파탄이 증가하고 사회는 분열되어 시끄럽다.

앞날을 위해 인성회복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과제다.

옛 어른들의 자손에 대한 가정교육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사회나 국가는 일관된 가치기준을 잣대로 하여 폭력을 엄히 다스리고 선행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의 첫 걸음은 본받을 만한 훌륭한 어른이 나서는 일이다.

그럼 본받을 어른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 훌륭한 어른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때를 기다리고 숨어있을 따름이다.

바로 이 잠재된 아름다운 심성을 일깨우는 작업이 인성회복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박영우 대구파티마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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