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에게는 '창조병'이라는 게 있다.
혼신을 다해 창작하거나 남다른 열정에 불을 지피다 보면 기력이 쇠진해 앓게 되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그 병을 이겨내고 장수한 예술가들도 적지 않다.
평균수명 40세를 훌쩍 뛰어넘었던 로시니(76), 쇤베르크(76), 헨델(74) 등은 미식.대식.애주.애연으로 스트레스를 먹고 마시고 태워 보낸 경우다.
시벨리우스(92), R 슈트라우스(85), 포레(79) 등은 고독하게 창작을 삶의 유일한 기쁨과 위안으로 삼으며 절제력과 낙천성으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여성 편력이 창조의 동기가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힘으로 작용한 경우도 없지 않다 한다.
하이든(77), 요한 슈트라우스 2세(73), 리스트(71) 등이 그렇게 창조병을 물리친 음악가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하이든은 악처 마리아를 피해 소프라노 루이자 등과 새로운 애정의 문을 두드리며 명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오래 사는 길을 열었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 음악가 중에는 '가곡의 대부' '한국 오페라의 산 증인'으로 일컬어지는 원로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吳鉉明.79)씨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근년 들어서는 방광암.간암 등으로 투병하면서도 그것이 전진을 위한 채찍질이라고 여길 정도로 도대체 휴식을 모르는 그는 할 일이 많아 죽을 수도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실제 2001년 6월에는 암을 이기고 건강을 되찾아 서울 국립극장에서 '노래 나그네 오현명의 회고 독창회'를 가져 세인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오현명씨가 최근 우리 문학의 새로운 요람과 온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김후란)로부터 '노래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한다.
이곳의 '음악이 있는 문학 마당'에 자주 출연해 유치환 양주동 등 국내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들을 줄기차게 부른 게 직접적인 계기였을 게다.
하지만 그보다도 언제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가곡의 발굴과 보급으로 시를 노래하는데 헌신해온 '한 길 인생'에 대한 문인들의 '경외감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명성은 어떠했든 예술가의 삶은 고달팠다.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버나드 쇼는 "참된 예술가는 아내를 굶기며 아이들에게 신발도 못 신기고 70세가 되는 어머니에게 살림을 거들게 하면서 자기 예술 이외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음악 앞에서는 결코 늙지 않는 '영원한 청년'이라는 찬사를 듣는 오현명씨도 그 삶의 안켠을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낮으면서도 묵직하고 포근하게 무대를 꽉 채우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오랜 건재를 바란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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