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마을입구에 수령이 수 백년 넘는 우람한 나무가 우뚝 서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마을의 상징물인 이 노거수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마을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노거수의 그늘을 찾았고 소망과 함께 근심, 걱정이 있을때는 노거수 아래에 몸을 숙이고 해답을 주기를 간곡히 기원했다.
노거수는 마을주민들에게 공동의 생활공간을 제공한데 이어 신앙의 대상으로서 역할까지 다한 셈이다.
그러나 근대화가 시작된 후 마을길을 넓히고 민속신앙은 미신으로 경시되는 풍조가 일게되면서 노거수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한다.
더욱이 급속한 산업화와 이농현상으로 농촌의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결과 노거수는 과거의 신령함과 영험마저 잃은 채 초라한 고목으로 남는 처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항 노거수회는 이처럼 개발논리에 밀려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져 사라져 가는 노거수를 지키고 보전하는데 앞장서는 모임이다.
노거수회의 노거수 기준은 수령 100년이상된 나무로 양팔로 껴안을 수 없는 크기.
또 주 수종은 대체로 느티나무, 팽나무, 느릎나무, 참나무, 회화나무 등이다.
회원들에게 노거수 보호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보호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화로 각박해진 사람들의 인성 회복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노거수와 같은 의연한 품성을 갖고 살기 위해선 수 백년 동안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해온 노거수림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
포항에 노거수회가 창립된 것은 지난 91년 3월.
이삼우 현 회장과 초대회장을 맡았던 이종근씨, 동화작가인 김일광 문협 포항지부장 등 각계각층에서 30~40여명이 참가했다.
만12년이 지난 지금 노거수회는 연회비 6만원씩을 내는 정회원만 100여명 가까이 되고 지역사회는 물론 다른 지역에까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활동이 활발한 단체로 성장했다.
회원들중에는 지역에서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분들이 많다.
우선 정장식 현시장과 박기환 전시장은 고문이며 정만락 남구청장, 배용재 변호사, 조유현 세무사, 윤종구 선일기업 회장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50, 60대가 주축이며 교수, 의사, 한의사, 학교장, 공무원 등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중인 인사들이다.
노거수회는 이달초 노거수회 회지 10호를 내며 지난 12년간의 활동을 되돌아 봤다.
쇠진한 노거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활동과정에 향토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됨으로써 자신을 되돌아 보고 뜨꺼운 향토애를 가슴속에 키운 회원들의 성과는 적지 않다.
91년 창립후 노거수회는 포항시 송라면 방석1리 노거수와 구룡포읍 눌태리 팽나무, 신광면 안덕리 당산숲, 흥해읍 민속박물관내 회화나무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여 노거수들이 행정기관과 지역단체, 기업들의 도움으로 되살아나게 했다.
노거수회의 활동은 1년에 2, 3차례씩 보호손길이 필요한 노거수를 찾아내고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답사, 향토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향토순례에서 비롯된다.
노거수회는 지난 92년 동해면 발산리의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지정 받게 했으며 이후 포항지역 모감주나무 매목지표조사를 지금까지 꾸준히 전개, 포항지역 모감주 나무가 군락지수나 개체면적 등에서 전국으뜸임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또 뿌리호흡곤란과 영양결핍으로 고사가 진행되던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에 있는 수령 700년인 마북느티나무를 1천200만원의 예산으로 회생작업을 진행시켜 노거수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 점도 회원들에겐 잊지 못할 활동 중 하나다.
노거수 보호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향토사를 공부하게 된다.
노거수의 내력을 알기 위해선 자연 그 마을의 역사, 문화를 파고들게 되기 때문에 향토사에 지식이 깊어지게 마련.
노거수회는 일년에 2, 3회씩 지금까지 30여회의 향토순례를 통해 노거수뿐만 아니라 고란초군락지, 칠포 암각화군과 함께 의병장묘소, 의병활동을 벌인 의병장, 이름난 성현들의 묘소를 참배하며 애향심을 키워왔다.
김일광 문협포항지부장은 "노거수회의 활동은 환경운동이자 녹색운동으로 마을의 역사와 환경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거수회원들은 칠월칠석을 만남의 날로 정해두고 모인다.
만남도 노거수회의 활동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지난해의 경우 마북 느티나무현장에서 신입회원과 기존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대와 친목을 다졌으며 2000년과 2001년에는 송라면 화진리 해당화 군락지와 흥해읍 초곡리 칠인정 탐방 행사속에 이뤄졌다.
노거수회는 요즘 포항시 송라면 하송리 '여인의 숲' 복원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렌다.
조선말엽 큰 주막을 경영하던 한 여인이 낸 식수헌금으로 조성된 이 숲의 복원사업은 노거수회가 김설보 여사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 해줄 것을 건의한 결과 7천만원의 예산으로 포항시에 의해 사업이 시행되게 됐다.
회원들은 오는 20일쯤 마을주민들과 함께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등을 심으며 여인의 숲인 지역의 명소로 되살아 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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