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람의 훈기가 있어야 오래 지탱한다"고 우리 할머니는 반들반들 툇마루에 마른걸레질 하신다.
하루 밤 딸네를 다녀오실 때도 그저 집 걱정이다.
집도 그런 할머니 마음을 느끼고 있는지 할머니가 안 계신 날은 왠지 집안이 어둑해졌다.
나는 겨우내 춥다는 핑계로 다 쓰러져 가는 작업실 흙집 방 한 칸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후딱 한 계절을 보냈다.
필요한 책도 찾아볼 겸 새삼 집 걱정이 되기도 해서 큰마음 먹고 차를 몰아갔다.
작업실이 가까워지자 혹 기둥 한쪽이 기울지는 않았는지, 어설픈 흙담이 기다림에 지친 다리를 놓아 버리지는 않았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서넛 평 남짓한 마당에는 흰냉이꽃, 민들레, 노란 꽃다지, 키작은 제비꽃까지 풀꽃들이 가득 작업실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대충 청소를 마치고 풀꽃 곁에 퍼질러앉아 깨알같은 꽃들과 눈을 맞추는 순간,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온 얼굴로 부끄러움이 번졌다.
부끄러워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풀꽃의 어리고 여린 숨결이 내 얼굴을 닦아주는 것 같았다.
얼굴을 씻고나자 더 맑아 보이는 풀꽃. 아! 이 따뜻한 봄을 풀꽃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제 몫을 다하는 풀꽃들. 마치 평화를 사랑하는 선구자 마냥 의연하기만 하다.
이번 봄은 우리에게 가슴 아린 일들을 너무 많이 겪게 했다.
흰 국화꽃의 순례, 가여린 촛불들의 시위며, 전쟁반대 파병반대로 나라안이 무거웠다.
이 지구의 아침을 몇몇의 큰 나라가 밀고 가는 것이 아님을, 황사 낀 이 시대를 잘난 몇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지구의 곳곳에는 풀꽃처럼 아름답게 제 소임을 다하는 작은 나라들이 있기에, 우리의 외곽에서 묵묵히 자기를 지켜 나가는 이들이 있기에, 지구의 일정한 기울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풀꽃들의 작은 기지개가 우주의 아침을 들어오리고 있다.
공터에 버려진 쓰레기 곁도 마다 않고 온갖 풀꽃이 피고 있다.
비록 공허한 목소리로 들릴지라도 더 이상은 전쟁의 씨앗이 자라지 않기를, 풀꽃들의 작은 이름으로 서명해 본다.
시인 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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