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지하철을 부산처럼 국가가 건설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한달째이나 정부는 수혜자 부담 원칙, 재정확보 곤란 등을 이유로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지방 지하철은 지자체가 맡는 게 원칙'이란 입장이던 고건 국무총리가 "정부 공사화 등 여러 대안을 놓고 종합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게 유일한 진전이다.
대구의 숙원이자 광주, 대전, 인천의 현안이기도 한 지방 지하철의 정부 공사화 움직임을 살펴본다.
▨대구 여론=청와대 비서진이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대구 민심의 수습 방안을 탐문한 결과 "대다수가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을 꼽았다"는 전언이다.
참사가 일어나자 '대구에는 왜 이런 일만 잇따르느냐'며 실의에 빠졌던 시민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참사의 근본 원인은 '돈'이었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지하철의 건설과 운영을 맡겨서는 제3의 참사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이 두차례나 수백명의 소중한 인명을 희생시키고 대구시 재정을 파탄 지경까지 몰고 갔으나 교통분담률은 한자리 수에 머물고 있는 점을 들어 "대구에는 애초 지하철을 건설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런 만큼 지금이라도 정부가 맡아 교통 수요와 재원 등을 감안해 지방 지하철의 건설 여부를 결정해야 재정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파탄'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 입장=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의 9일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고건 총리와 최종찬 건교장관은 한결같이 "수혜자 부담원칙"을 내세웠다.
지방의 필요에 의해 건설했고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니 부담도 지방이 지라는 것이다.
고건 총리는 다만 "정부공사화를 포함해 여러 대안을 검토하겠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난색을 표시하는 속내는 단하나 '돈'이다.
부산지하철을 정부가 맡아보니 애물 덩어리였던 것. 부산교통공단의 현재 부채는 2조6천억원으로 이자까지 포함하면 3조원이 필요해 건교부와 공단 관계자가 골치를 썩이고 있는 마당인데 대구까지 맡으면 대책이 없다고 지레 겁먹고 있는 것. 광주, 대전, 인천 지하철도 정부의 부담이다.
▨정치권 움직임=여야 모두 대구지하철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논리와 해법은 다양하다.
국회 4월 임시회에 한국지하철공사법안을 대표발의한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은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부산 지하철을 한국지하철공사가 모두 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구지하철만 정부가 맡으라고 하면 우선 동료 의원들부터 특혜라며 반대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정부안인 철도청의 공사화와 연계한다는 복안도 박 의원은 갖고 있다.
한국지하철공사를 만들어야 한국철도공사를 국회 건교위에서 심의 의결한다는 '바터제 배수진'이다.
박 의원은 관련 법이 만들어져도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법이 만들어졌으나 실행되지 않고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이 무수하다는 것.
신영국 건교위원장은 지하철 건설은 정부가 하고, 운영은 지자체가 맡는 '역할 분담론'을 펴고 있다.
정부가 운영까지 맡는 것은 지방분권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란 논리다.
박종근 의원은 국회에 지하철특위를 구성해 지방 지하철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뤄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이 타당한지, 공사 설립에 필요한 예산은 얼마인지, 정부 주장대로 예산을 마련할 방안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혼선만 빚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강재섭 의원은 지하철 특위 구성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이미 구성돼 있는 여야정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면 된다는 것.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보는 막후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이 특보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대구는 물론 광주, 대전도 곧 지하철로 인해 재정파탄이 예상되는 만큼 차제에 화끈하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 특보는 또 10일 여의도 당사에서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을 만나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건교부 차관과도 조만간 회동할 계획이다.
이처럼 지하철 해법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다양한 접근이 어떤 식으로 매듭될지 주목된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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