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승용차 시판 논란

입력 2003-04-11 09:34:15

정부는 최근 지난 20여년간 고집해온 경유차 억제 정책을 거둬들이고 경유승용차 시판을 전면 허용키로 했다.

이에 맞춰 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도 국제수준으로 대폭 완화키로 했다.

디젤엔진의 공해저감기술 향상과 자동차업체의 요구, 외국의 통상 마찰 우려 때문이란 것.

그러나 이번 결정은 불과 2년전인 지난 2000년 10월 정부가 경유승용차에 대한 미세먼지와 산화질소 등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한 것에 비춰볼때 언뜻 납득되지 않는다.

당시 유럽 등 선진국의 어떤 경유차량도 달성하지 못할 정도의 높은 기준으로 강화했었다.

이유는 국내 경유승용차 제작 준비 미비에 따른 외국 경유차 수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젠 경유승용차를 외국에 수출하다보니 배출가스 허용 기준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경유차 억제 정책도, 허용 방침도 환경보단 경제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됐던 경유승용차 판매가 결국 허용됐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2005년부터 경유 승용차 국내 판매를 허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경유승용차 허용 문제를 함께 논의했던 민관협의체인 경유차 환경위원회와 1년여간의 진통끝에 내놓은 합의안에서 상당부분 후퇴한 결정이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환경부는 그동안 휘발류·경유·LPG의 상대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경유승용차 시판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산업자원부 등 관계부처가 가격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배출가스 기준을 하향 조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해왔었다.

이에 34개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경유차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서울에서 정부 방침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환경위원회도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경유 승용차 판매 결정은 그동안의 합의를 무시한 결정이라며 시판 허용 철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 방침

정부는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의 오염물질 배출허용 기준을 유럽연합(EU) 수준으로 조정해 '유로-3(2000년부터 EU에서 적용되고 있는 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과 '유로-4(2005년부터 적용될 기준)' 차량의 국내 시판이 허용되고, 2006년부턴 '유로-4'를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환경위와 2005년 '유로-3, 유로-4 차량의 50대 50 쿼터제'를 적용키로 한 합의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대신 가격이 비싼 유로-4 차량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를 50% 감면하기로 했다.

반면 자동차 소비가 휘발유차량에서 경유차량으로 급속히 옮겨가거나 경유 다목적차(RV)가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 차량에 대해 휘발유차와의 차액(150~200만원 정도)을 경유승용차와 경유다목적차에 중과하는 '역인센티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 교통공해과 김태식 사무관은 "그동안 경유승용차를 억제해왔지만 디젤엔진의 공해저감기술이 향상됐고, 자동차업계 및 외국기관 등의 요청, 유럽의 경유차 시장 확대 등으로 통상마찰 우려도 높아 더이상 경유승용차를 묶어두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철회 주장

이에 대해 경유차 환경위는 "대기오염 방지 대책을 뒤로한채 경유승용차 시판을 허용한 것은 위원회 합의안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일방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와 환경위는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를 국내 판매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되 매연여과장치(DPF)를 의무적으로 2005년 50%, 2006년 이후 80% 부착하기로 합의했다.

또 2006년 7월부턴 휘발유:경유:LPG 가격을 100:85:50으로 조정키로 했고, 경유 황함량을 현재 430ppm에서 30ppm으로 강화키로 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위와의 합의 내용과는 달리 허용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매연여과장치 부착 의무화 비율을 제시하지 않았고,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문제도 경유승용차 판매 추이를 지켜보며 2005년 중 국제 수준으로 조정한다는 원칙만 내놓았다.

따라서 올 6월 경유승용차 시판허용을 위한 대기환경보전법시행규칙이 개정되면 합의안이 법제화될 가능성이 희박해질 우려가 높다는 게 환경·시민단체들의 우려다.

또 2005년은 유로-3, 유로-4 수준의 경유승용차가 이미 판매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정책을 수립하기가 너무 늦어진다는 것. 이에 환경위 등은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과 경유승용차 쿼터제 도입, 매연여과장치 의무화 등 위원회와의 합의사항을 조속히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이진우 간사는 "이는 대기보전을 위해 구성된 민·관협의체의 공동 노력의 산물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이라며 "4월 한달을 집중 투쟁 기간으로 정해 환경 활동가 1천인 선언, 성명서 발표, 장기농성 등을 펼쳐 정부 결정을 철회하고 환경위원회의 전제조건이 관철되도록 국민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등 합의안 재검토

우리나라 경유가격은 2002년 6월 현재 휘발유 가격의 54% 수준에 불과, 전제조건 이행없이 경유승용차 시판이 본격화되고 배출가스 허용기준이 낮아지게 되면 경유자동차 급증은 물론 대기오염 악화도 불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

환경위, 환경·시민단체 등이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경유가격을 영국 102% 미국 100% 까지는 아니더라도 80%대 수준으로는 조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환경부도 지금의 에너지 상대가격이 유지되면서 경유승용차 판매가 허용되면 12년 동안 휘발유승용차의 70% 정도가 경유승용차로 바뀌고, 이에 따라 국내 승용차 중 경유차 비율이 80%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2005년 한해에만 30-50만대의 경유승용차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대기오염 악화를 막기 위해 빠른 시일내 관계부처간 실무협의를 거쳐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및 매연저감장치 부착률 제고 등 경유차 환경위원회가 내놓은 합의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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