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대중체육, 엘리트 체육

입력 2003-04-10 11:54:09

대학교 4년을 같은 학과에 적을 둔 사이클 선수였던 친구는 거의 학교를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캠퍼스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아시안게임이던가 금메달을 딴 축하자리인 무교동의 막걸리파티장에서도 우리 과(科)친구들은 이 사이클 선수와 어색해 했었다.

지금도 궁금한 게 있다.

이 사이클 선수의 학점 수준은 어느 정도 였을까. 시험도 치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각각 몇점을 주었는지, 크게 고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의에 그렇게 빠지고, 중간, 기말, 과제물 제출을 외면했어도 그 친구는 거뜬하게 필자와 같은해에 사각모를 쓴 것으로 졸업생명부에 기록되어 있다.

건국이후 유독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학교 체육체계다.

선수들은 초등학교서부터 중.고등 할 것 없이 대학교에서조차 학교 수업을 팽개쳐도 학생신분 유지는 물론 각종대회 출전도 가능한 게 한국 학교체육의 현주소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면 상당수 선수들은 평생 먹고 살 걱정이 거의 없는 가히 '체육천국'이 우리나라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체육기계'를 만드는 풍토가 우리 사회전체에 어떤 역기능을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없는게 문제다.

너도 나도 '체육귀족'을 향해 뛰는, 그것도 어린 나이때부터 정상교육을 제쳐두고 '운동기계를 만드는 작업장'에 몰아넣는 게 우리 체육이 아닌가.

대구.경북지역이 연고팀인 삼성라이온즈 마해영(33) 선수의 토로는 소위 엘리트 학교체육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고 한다.

3월초 개학하자마자 합숙훈련에 이어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나서 4월에 학교에 왔더니 교실에 자신의 책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물론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런 한국적인 상황에서 몇년전 수영선수의 태릉선수촌 입촌(入村)거부 사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00년 5월 당시 여중 2학년이었던 장희진양이 국가대표선수로 선발 되었지만 "정상적으로 공부하며 운동하고 싶다"며 2001년 미국으로 떠났다.

수영협회는 장양에게 국가대표 선수 자격 정지 조치로 대응했었고, 이 파장은 엘리트 학교체육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26일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어린선수 8명이 집단 사망한 일도 그 뿌리는 초등학교 학생에까지 비인간적인 합숙소 생활을 강요하는 잘못된 관행에 있다.

학교가 대회성적을 강요하고 따라서 오로지 성적을 위해 어린 선수들을 가혹한 합숙훈련에 몰아 넣는 행태가 고쳐지지 않는 한 또다른 불씨는 남아 있다고 봐야한다.

체육에 뛰어난 재목의 특별 육성은 당연하다.

전제는 정상교육이다.

사회에서도 제몫을 할 수 있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 할 책무는 사회 전체가 져야 한다.

역할의 주체는 학교다.

학교체육개혁을 서둘 일이다.

체육선생님들의 현실 직시와 미래 체육에 대한 연구와 비전이 접목된 방안을 기대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최선의 처방이 아닌가. 학교체육경기의 방식이 토너먼트가 적합한 것인지, 리그전이 심성 개발에 좋은 것인지 선택은 현장 선생님들의 몫이다.

미국에서 약육강식형 토너먼트 경기는 안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갈 일은 아니지만 학교체육교육개혁의 자료는 된다.

우리의 바람은 운동기계가 아닌 운동선수 육성에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의 학업도 병행이어야 한다.

우리도 이제 대중체육, 사회체육쪽으로도 관심을 가질때가 됐다.

엘리트체육의 결과물인 올림픽 금메달, 아시안게임 메달수에 그렇게 연연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국민들 상당수가 이런 반응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독재의 시대에 유난히 강조되어온 메달 획득, 메달수가 바로 국력(國力)이라는 오도되고, 이상한 등식관계 설정의 이미지가 지금도 남아있다.

국력과 올림픽메달수와 무슨 관계나 있나. 올림픽 금메달이랄지 월드컵 축구의 성과등이 가져다 주는 국위 선양(宣揚)과 국민들의 결집(結集), 일체감 조성 등 순기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력으로 포장 할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권력이 스포츠를 통치수단의 하나로 이용한 과거의 폐해를 말끔히 씻어낼 일이다.

정신건강을 포함한 국민전체의 건강수준이 한국 경쟁력 수준이자 가치의 제고능력이다.

대중체육으로 무게를 이동할 때다.

언제까지 엘리트 체육에 체육예산 대부분을 쏟아 부을 것인가. 일반인들의 체력증진을 위한 장소, 프로그램 개발 등에 예산 절반정도를 배정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보는 체육을 뛰어넘어 참여스포츠가 세계적인 추세다.

일반국민들에게도 체육시설을 폭넓게 활용할 방안을 세워라. 대중체육 후진국이라는 오명(汚名)을 계속 뒤집어 쓰고만 있을 것인가.

최종진 논설주간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