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히틀러와 노무현의 눈물

입력 2003-04-07 12:17:00

냉혹한 독재자의 이미지를 지녔던 아돌프 히틀러도 실은 눈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항상 감정을 폭발직전까지는 이성의 둑으로 막아놓고 있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했으며 끈질긴 권력투쟁 동안에 자신의 힘이 꺾이는 걸 막을 필요가 있을때나 야망대로 안될때는 여자처럼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치당의 라이벌 지도자인 '오토 슈트가세르'가 분당(分黨)을 시도 했을때는 그를 만류하기 위해 밤새 세번이나 정적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눈물이 많아 보인다.

사흘전 청와대에서 있은 동티모르 순직·실종자 유족들과의 아침식사 자리에서도 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직장교의 노모가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마이크를 쥔채 목이 메였다가 끝내 같이 눈물을 보인 것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모 정당의 창당대회 자리에서도 대중앞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측근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쏟았었고 당선자 시절인 1월31일에는 방송에 출연, 전국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사법고시 합격때의 얘기를 하던중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또한 2월23일 청와대 비서관 워크숍 자리서도 옛 비서들의 편지 얘기를 하다가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지난 선거때 노 후보의 선거홍보 TV CF화면중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흐르던 우는 장면도 새삼 기억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보그 같은 지도자보다는 그래도 보통 시민들이 눈물날 만한 분위기에서는 그 역시 눈물 흘릴줄 아는 감성있는 지도자가 따뜻해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냉철하고 합리적 이성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국정수행에서 갸냘픈 울보처럼 나약해지거나 독선과 아집 같은 감성적 독단으로만 빠지지 않는다면 지도자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눈물은 많아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눈물이 많다는 공통점을 지닌 감성적 성격의 두 사람이 유독 언론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독단적이고 적대적 인식을 지니고 있음은 기이하다.

히틀러와 노 대통령 두사람에 대한 정치적 공과나 성향은 제쳐두고 언론관에만 주목 해보려는 것은 오늘이 마침 '신문의 날'이어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히틀러의 언론(신문)인식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일부 신문)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닮아 있다.

히틀러는 신문을 뻔뻔스럽고 무책임하며 정부가 하는 일에는 트집이나 잡고 발목 잡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는 언론에 대한 어록에서 "신문은 임금인상의 찬성론을 떠벌리는가 하면 곧 이어 임금인상으로 인한 물가상승을 한탄하고 다시 이에따른 환율의 하락이 정부 책임이라고 대서특필한다.

얼마나 뻔뻔스런 신문의 혼이냐"고 비판했다.

"경제도 언론이 부정적으로 쓰면 안좋아진다"는 식으로 보아온 노 대통령의 논리와 닮아있다.

또한 "오늘 우리가 건설하려는 것을 오직 파괴할 목적으로만 하는 신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참아서는 안된다"는 히틀러의 인식과 "오늘 우리(참여정부 세대)가 개혁하려는 것을 발목잡고 비판만 하는 신문에 대해서 참지 말고 전쟁하자"는 취지의 노무현 쪽 언론인식도 닮아 있다.

저 눈물 많은 따뜻한 감성속에 어떻게 언론에 대한 투쟁적인 전의(戰意)만은 그처럼 강하게 스며들어 있을까. 그들의 눈물은 톨스토이가 말한 인간의 두가지 눈물중 타인을 위한 자비의 눈물보다는 자신과 자기 선행(善行)에 아첨하는 쪽의 눈물이어서일까.

이제는 자신의 고시합격 추억에 눈물짓는 것도 좋지만 불황의 취업난에 꿈과 이상이 꺾인 수십만 젊은 실업층의 눈물도 생각할 때다.

측근과 비서팀들의 추켜세우는 연설이나 응원에 감동하는 눈물보다 IMF를 능가한다는 불경기로 시름에 잠긴 영세 상가, 식당의 서민, 근로자와 함께 울어줄 눈물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위한 눈물을 보이지 않았듯이 북한 동포의 인권과 굶어죽는 어린이에 대한 노무현의 눈물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앞에는 감성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냉엄한 현실과 다급한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눈물 많은 노 대통령은 이제 무엇부터 가장 먼저 고뇌하고 무엇을 놓고 국민과 함께 눈물지을 것인가를 감성보다는 이성과 리더십으로 판단해가며 앞장서야 한다.

투쟁하고 공격하고 몰아치는 모습보다 눈물 많고 인간미 넘치는 부드러움속에서도 험한 일도 평화롭게 풀어낼줄 아는 겸허하고 따뜻한 지도자가 돼주시라. '전쟁'같은 강한 용어를 쓴다고 강해 보이거나 상대가 굴복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연설때 명색 대통령이 입장하는데도 대다수 의원들이 기립도 안한 모습에서 두려움과 존경심은 다른 것임을 깨닫게 한다.

오늘 신문의날 기념식에서는 부디 전쟁 아닌 화합과 상생의 덕담을 기대해 본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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