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 땅에서 며칠 혹은 수십 년을 살다가 가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한 채 떠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몸서리처지는 고통과 지독한 외로움 앞에 존엄성을 지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이 있어도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오랜 병마에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에게 임종을 기다리는 가족은 짐일 뿐이다.
하물며 피붙이 없는 이들에게 죽음은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다.
그뿐인가. 사랑하는 이를 떠난 보낸 유족들의 상처는 어쩔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과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우리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대구 호스피스 사람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변호사·회계사·가정간호사·호스피스간호사·영양사·물리치료사·일반 봉사자 등이 팀을 이뤄 무료 가정방문 활동을 펼친다.
가정방문형 무료 호스피스는 전국에서 '대구 호스피스'가 유일하다.
환자들의 마지막 인생 길동무가 된 '대구 호스피스'의 활동을 훔쳐보았다.<
환자와 가족들의 사적 비밀을 지켜달라는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환자 김씨가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은 것은 꼭 1년 전이다.
이따금 심한 출혈이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자궁경부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은 것이다.
자궁을 들어내기 위해 개복술을 했던 의사는 두말없이 다시 닫았다.
칼을 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암이 몸뚱이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됐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야했고 환자는 혼자였다.
몸뚱이를 씻어줄 사람도, 몸뚱이를 자주 뒤집어 줄 사람도 없었다.
등에는 욕창이 번지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시커먼 때가 진을 쳤다.
죽음과 맞서 싸우며 8개월을 버티던 젊은 부부에게 호스피스가 소개됐다.
그러나 환자와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에게 사별이라니! 부둥켜안고 울 뿐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살 수 있다고, 꼭 살아야겠다고 이 악물고 버티는 환자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석달 후 신혼부부는 끝내 '대구 호스피스'를 다시 찾았다.
지난 2월 중순이다.
호스피스의 첫 번째 임무는 환자의 통증 완화이다.
치료할 수 없다면 고통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치료에 집착할 뿐 통증을 없애주지 않는다.
여기에는 병원의 '협진 시스템'부재가 한몫을 한다.
예컨대 자궁경부암 전문의는 암에 신경을 곤두세울 뿐 통증 전문의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호스피스들은 '호스피스 도움 신청서'를 근거로 의사의 협조를 요청한다.
그리고 환자의 몸에 통증조절 장치를 부착한다.
적합한 통증 전문의를 찾는 데도 호스피스의 경험은 큰 힘이 된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의 고통을 누구나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맞은 통증조절 장치를 부착한 환자는 임종 때까지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의 얼굴에 처음으로 엷은 미소가 생겨나는 순간이다.
통증이 사라지면 목욕과 옷 갈아 입히기, 침대와 방 청소 활동이 이뤄진다.
다음은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 듣기. 환자와 가족의 불편, 고통, 외로움, 슬픔, 향후 생각들에 대해 차를 마시며 천천히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호스피스는 그들의 어려움을 낱낱이 끄집어낸다.
그리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은 연습이 필요하다.
자식의 죽음 앞에 아버지도 용서를 구하도록 한다.
살아오면서 맺힌 것을 풀어야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선 무엇이 필요할까. 영정사진, 연락처, 수의 등 가족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일러준다.
환자가 임종하는 순간까지 신체에 더 이상 손상이 없도록 갖가지 주의사항을 알린다.
시간대별 임종 증상에 대해 가르쳐주고 너무 늦지 않게 연락할 것을 주지시킨다.
예외가 있지만 1주일 내 임종징후, 48시간 내 임종징후, 24시간 내 임종징후를 소상히 알려준다.
모두 경험과 교육을 통해 익힌 것들이다.
임종이 1주일쯤 남았다고 판단되면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매일 환자의 가정을 방문한다.
이즈음 '심폐 소생술' 실시 여부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
호스피스는 거의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지 않는다.
단순 사고일 경우 응급처치로 환자를 살릴 수 있지만 결국 떠나야 할 환자라면 고통을 덜어주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임종징후가 나타나면 가족들에게 '좋은 곳에 가 계시면 꼭 따라가겠노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임종에 임한 환자는 극도의 불안과 외로움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은 물론 이어질 장례와 49재까지 호스피스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망자와 유족의 종교에 맞춰 역시 대구 호스피스 회원인 스님과 목사, 신부님을 불러 장례를 마무리한다.
유족들의 형편에 맞게 장례비용 부담 줄이기는 물론 절차 간소화, 대기 시간과 유족의 불편을 줄이는 일까지 호스피스가 담당한다.
장례가 끝난 후에는 유족들이 해야 할 일, 이겨내야 할 것들, 이겨내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1년 6개월 간 수시로 확인한다.
'대구 호스피스'는 홀로 남은 유족에게 '잘 지내십니까?'라고 두루뭉술하게 묻지 않는다.
대신 '아침 식사는 무슨 반찬으로 드셨나요?' '어제 외출하셨나요?' '누굴 만났나요?'라고 구체적으로 묻고 그 대답으로 유족의 심리적 상황을 파악한다.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의 진단을 권유하고 동행한다.
그렇게 유족이 망자를 보내고 사회로 온전히 복귀하면 '대구 호스피스'의 활동은 비로소 끝이 난다.
이 모든 활동은 오직 성금과 회원들의 눈물겨운 봉사로 이루어진다.
'사후생'의 저자이며 세계적인 죽음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임종 전 환자가 원하는 4가지를 "△도와달라 △귀 기울여달라 △곁에 있어달라 △기억해달라"라고 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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