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칼럼-역사의 눈 시의 눈

입력 2003-04-01 12:06:45

역사란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6세기경이라고 한다.

중국의 명왕조(明王朝) 말에 더 정확하게는 신종(神宗)의 만력연간(萬曆年間)에 원황(袁黃)이 '역사강감보(歷史綱鑑補)'라는 책을 낸 뒤부터라고 한다.

역사의 역은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일이 생겼다는 것, 즉 과거의 어떤 사실을 말함이다.

사는 기록이요 동시에 기록하는 사람을 뜻한다.

역사란 그래서 주객(主客)이 합해진 꼴이다.

사실은 객관적이고 기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주관적이다.

그래서 또 역사를 존재와 인식이라고 말하는 역사철학자도 있다.

존재란 객관적 사실이요 인식이란 인식주체의 주관적 사물파악이다.

역사란 다시 말해서 일종의 모순개념이다.

어울리기 어려운 것들끼리 한자리에 있게 된 형상이다.

역사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의 관념이랄 수 있다.

현실에는 없다.

있다고 할 적에는 어떤 사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 기록들을 기워맞춰서 하나의 체계를 만든다.

(소설의 구성과 비슷하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역사란 대체로 그런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엄연히 있어야 한다.

그것의 단적인 증거(예)가 바로 공자의 '춘추(春秋)'라고 할 수 있다.

'춘추필법(筆法)'이란 말이 있지만 그것은 역사에 대한 하나의 경고(警告)적 본보기가 된다.

'춘추필법' 그 자체가 윤리를 위한 경고로 쓰여졌기 때문인데 모든 역사는 그런 용도(用途)를 가지고 있다.

EH카가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한말도 바로 그것(교훈)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김대중 음모사건의 최종판결이 법정에서 내려졌다.

그때의 관련자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왜 그 정도에서 그쳐졌는지 모를 일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란 역사적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라, 그 사건의 명칭이 가리키듯이 '음모'란 가치부정적인 표현이다.

한때는 그렇게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졌다.

그때대로 그 판결이 역사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층도 분명 있었으리라. 그렇잖다면 그런 명칭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역사는 때로, 아니 역사란 이름으로 억지스러움이 예사로 백주대로를 활보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간혹 리즈만의 저 유명한 책 '군중(群衆)속의 고독'을 절실히 생각해보는 때가 있다.

월드컵 그때의 '붉은 악마'들의 대군중과 '촛불시위' 그때의 대군중을 TV화면으로 보면서 나는 갑자기 외로워졌다.

나는 그 어느쪽에도 끼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끼이기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끼었다 하더라도 나는 더한 고독을 느꼈으리라.

나는 언제나 어떤 차원에서는 나 혼자다.

단독자일 수밖에는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것인가 하고 나는 내 처지를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곤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시를 버리지 못하니까 말이다.

시의 눈은 역사의 저편을 보고 있다.

역사는 끝이 없지만 시는 이미 끝이 나있는 세계를 본다.

아니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시와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어디서나 시인일 수 만은 없다.

나는 현실에서는 역사의 시간에 얽매여 있다.

역사와 함께 언제나 쉬임없이 가고있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그 교훈 속으로 말이다.

역사여 그러나 아무데도 없는 그 얼굴이여, 참으로 나는 네가 한번 보고싶구나.BR>

한마디 더 덧붙이기로 하자. 왜 개나 소나 꽃이나 풀이나 나무에게는 역사가 없는가? 그들은 이미 역사를 졸업했는가? 아니면 역사에는 아직도 미달인가? 역사가 있는 것보다 역사가 없는 것이 더 좋은 가 나쁜가 하는 판단은 잠간 유보상태로 두자. 지금은 그럴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가 객관적인 어떤것이라면 동식물에게도 있어야 한다.

아니 있다고 해야 한다.

단지 그들이 의식하지 못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역사란 의식의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역사에 깊이 빠지지 못 하는 옅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함부로 흔들어 깨우지 말 일 이다.

주제넘지 않은가?

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