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편한 50대 중반의 김모씨는 한평 남짓한 여인숙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쪽방 거주자"이다.
대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쳤다.
보상금은 300만원. 김씨는 유일한 혈육인 노모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지금 사는 쪽방은 일세 5천원짜리. 구걸한 돈으로 근근이 낸다.
밥은 무료급식소에서 얻어 먹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또다른 쪽방 거주자 박모(55)씨는 상고를 졸업하고 유망하다던 인쇄소에서 조판일을 하다 10여년 전 일자리를 잃었다.
조판작업이 전산화되면서 20년 넘게 익힌 기술은 쓸모없어졌고 박씨는 꼼짝없는 실업자가 돼야 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해 집을 등졌다고 했다.
건강보험료가 체납되고 거주지 불명 등 이유로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그의 주민등록은 지난해 쪽방상담소 도움을 받고야 복원될 수 있었다.
상담소측은 주민등록을 되살리려 해도 그 비용 10만원을 구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겨우 기초생활 수급자가 된 박씨는 그 덕분에 지원받는 월 20만원 가량의 지원비와 고물을 주워 버는 하루 4천원 가량을 전 수입으로 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70대 이모 할머니는 10여년 전 아들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지만 아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낼까 두려워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지 않겠다고 했다.
산나물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는 곧 있을 유니버시아드를 걱정했다.
지난해 월드컵 대회 때처럼 노점상 단속이 다시 심해질까 두려운 것.
쪽방 거주자들에게 봄은 아직 멀리 있다.
대구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칠성동·대현동 등 쪽방 거주자들은 900여명 가량. 그 중 300여명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호적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도 못되고 있다.
월 13만~17만원 하는 방세를 내는 것조차 빠듯한 형편.
쪽방상담소 허영철 실장은 그러나 "쪽방 거주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료서비스"라고 했다.
미국 경우 병원들이 환자의 신원이 불명확해도 일단 치료부터 한 뒤 병원내 의료복지사가 신상을 파악해 치료비를 청구하는 반면, 국내 병원들은 신원이 불확실한 쪽방거주자들에겐 치료를 해주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것. 그래서 쪽방상담소의 활동도 주민등록 생성, 의료 서비스 제공, 방문 상담 등에 치중되고 있다고 했다.
허 실장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때문에 쪽방 거주자가 된 이들이 재기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정부와 일반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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