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달리 할 말이 없다(?)'

입력 2003-03-31 11: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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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천화(遷化)'라는 말이 있다.

고승(高僧)들의 적정(寂靜)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의 더 깊은 뜻은 입적(入寂)을 앞두고 깊은 산에 홀로 들어가 나뭇잎을 요와 이불 삼아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아름다운 열반(涅槃)'을 일컫고 있다.

생몰 년대를 뛰어넘는 고승들의 삶이 신비스러운 것도 거기에 뿌리가 있겠지만, 생사의 갈림길을 이웃집 나들이 정도로 여기는 고승들의 범연함에는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도를 깨친 승려들이 남기고 간 '열반송(涅槃頌)'은 '정신적 사리(舍利)'에 다름아니다.

▲'죽음이란 달 그림자가 못에 잠기는 것'이라 했던 혜근(惠勤)이나 '어허 우습도다.

소를 탄 사람이여/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라 했던 태능(太能)의 임종게(臨終偈)는 세속에 찌든 우리를 바늘로 찌르는 정신적 사리들이 아닐 수 없다.

열반송.임종게.오도송(悟道頌).게송(偈頌) 등은 때와 장소에 따른 이름일 뿐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화두들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불교 조계종 전 종정이자 문경 봉암사 조실인 서암(西庵.86) 스님이 29일 입적하기 전에 남긴 열반송이 화제를 낳고 있다.

측근들이 채근하자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만년에 제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올리면 "고목에 비료 주는 것이냐"며 물리치기도 했다는 그지만 60년 넘게 수행한 선승(禪僧)의 이 열반송이 전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 불교계의 '대표 수좌(首座)'로 일컬어져온 그는 선불교(禪佛敎)의 최고 수행도량인 봉암사의 오늘을 만든 인물이며, 모범적인 선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광복 후 성철(性徹).청담(靑潭) 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結社)로도 유명하지만, 6.25 이후 폐허가 됐던 봉암사는 1970년대 이후 서암 스님이 그 전통을 일으켜 세워 명실공히 '수좌들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상식을 초월한 이 열반송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지 않는가.

▲서암 스님은 평소 '남을 위해 마음 쓰는 것이 자기가 사는 길'이라며, 제자.신도들에게는 늘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 거 없어"라고 일축했다 한다.

빈손으로 왔다 가는 걸 증명하기 위해 죽어서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았다는 어느 부자 이야기가 한없이 경외스러운 이 세태에 그가 남긴 정신적 사리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병들고 늙는 것을 고통스러워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래도 인간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여기는 속진(俗塵)이 날로 두꺼워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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