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중견작가 콩트 릴레이-출산면허

입력 2003-03-29 09:29:57

면허시험장은 입구부터 붐비고 있었다.

인구위기 해소를 위한 특별대책으로 전업(專業)면허 응시요건을 대폭 완화한데다, 한시(限時)면허도 발부 대상을 배로 늘인 까닭인 듯했다.

하지만 전업면허 응시자와 한시면허 응시자간의 차별은 여전했다.

양쪽 다 시험이란 점에서는 같아도, 시험을 치르는 장소와 방식이 사뭇 달랐다.

전업면허 응시자들은 아늑하게 꾸며진 시험장과 대기실에서 개별적으로 건강과 지능과 인성(人性)을 검증받았다.

그러나 한시면허 응시자들은 널따란 강당에서 와글거리며 한꺼번에 필기시험을 치렀고, 건강검사와 면접도 역시 그 강당에서 줄서 기다리다가 몇 명씩 함께 불려나가 치러야 했다.

응시자들을 대하는 시험관들의 태도도 달랐다.

근래 들어 부쩍 응시자가 줄어들어서인지 전업면허 시험관들이 응시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은근하다 못해 사정조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유지가 위협받는 상황이라 해도 한시면허 시험관들은 전과 다름없이 위압적이고 또 권위적이었다.

그런데 혜민(慧珉)은 바로 그 한시면허를 따기 위해 응시하고 있었다.

공연히 으르딱딱거리는 시험관들에게 오전 내내 시달리며 신체검사와 필기시험을 치렀으나 시험은 아직 반도 치르지 못한 채였다.

신체검사와 필기고사의 컴퓨터 채점을 기다렸다가 다시 면접에 들어가야 하는데, 듣기로 한시면허에서는 바로 그 면접이 가장 까다롭다고 했다.

의자조차 사람 머릿수대로 돌아오지 않는 강당 대기실을 서성거리면서 오전에 치른 시험 채점결과를 기다리다 보니 혜민은 갑자기 피곤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그것도 시험이라고 간밤 늦게까지 컴퓨터에 붙어 앉아 예상문제를 점검한 데다 다시 오전 내내 시험으로 긴장한 탓인 듯했다.

내가 꼭 이래야 하나, 하는 기분이 들면서 문득 응시를 결정하던 날 만났던 어머니의 푸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마음대로였어. 오히려 서로들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했지. 그때는 일하는 여자들이 잘나고 똑똑해 보이던 시절이었거든. 전업면허를 가진 사람들은 바보나 무능력자로 치부되었고, 한시(限時)면허를 따는 여자들마저도 왠지 미련스러워 보였어.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 이제는 그때가 차라리 좋았다고 해야 되나…".

중등학교 시절 '함께 살기(社會)'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우리가 선진국들과 순위를 다퉈가며 출산면허제(出産免許制)를 실시한 지는 삼십 년쯤이 된다.

면허제로 이행되기 전의 과도기, 다시 말해 '일하는 여자'와 '아이 낳는 여자'가 구분되지 않았을 때, 우리 사회는 두 가지 상반된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급속한 인구감소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부담을 유발하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였다.

인구감소는 그 당시 사회구조와 의식상황의 특수성에 따른 출산기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산업화란 이름으로 쓸데없이 일거리만 늘인 사회가 여성인력을 끌어다 쓸 목적으로 여성노동의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미화 과장한 탓이었다.

이제는 노예해방 만큼이나 고색창연한 말이 되어버린 여성의 사회참여니 자기성취니 하는 말이 바로 그러한데, 그 시절 그 말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똑똑한 여성들은 모두 참여하고 성취하기 위해 출산을 기피해 정상적인 인구는 심각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통제되지 못한 일부 여성의 출산욕구 때문에 사회가 그 양육과 보호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곧 일과 출산을 겸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으로, 그 중에는 산모와 영아 모두에게 불행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중금속을 취급하는 일터를 가진 어머니가 약물중독으로 출생자체가 불행인 기형아를 낳거나, 전투병과에 근무하는 어머니가 임무수행 중에 태아의 뇌를 다쳐 지진아를 낳게 되는 따위였다.

국가는 그 두 가지 위협을 한꺼번에 제거하기 위해 먼저 모든 여성을 '일하는 여성'과 '아이 낳는 여성'으로 나누었다.

전업 출산면허란 아이를 낳아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것을 일로 삼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무제한적인 출산권이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에게도 일시적으로 출산을 허용하였는데, 그게 바로 한시 출산면허였다.

우수한 다음 세대를 생산, 확보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면허를 따는 과정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업면허는 국가의 대계(大計)라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우대를 하는 만큼이나 결격사유가 엄격했다.

철저한 건강진단을 통해 사회에 유전되어서는 안될 육체적 인자(因子)는 물론 품성이나 자질까지도 고려되었으며, 서류전형으로 학력이나 지능뿐만 아니라 사회적응 능력까지 점검되었다.

그러고도 다시 면접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이로서의 각오를 길러주고 다짐을 받았다.

한시면허의 경우는 더욱 까다로웠다.

검증이 느슨하여 함부로 출산을 허락했다가는 다음세대에 부담만 주는 인구를 늘여 사회의 존속자체를 위협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에 있어서도 한시면허를 신청하는 여성들 중에는 종종 좋은 것만 다 하려는 욕심이나, 절제되지 못한 동물적 출산욕구에 휘몰려, 요건도 갖추지 못한 체 면허만 따려고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한시면허는 시험이라기보다는 결격사유를 찾기 위한 심문 같았다.

그래도 면허에 따른 여러 특전 때문인지, 지난 이십여 년 간은 여성 가임(可妊)세대 10%확보라는 목표가 그런대로 어렵지 않게 달성되었다.

그런데 근년 들어 여러 가지로 조짐이 좋지 않더니 마침내 전업면허 쪽에서 먼저 적신호가 왔다.

갑자기 전업면허 지원자가 줄어들어 한시면허 포함 연 1.5% 인구증가율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그게 이번에 한시면허 발부 요건을 완화시킨 원인이 되었다.

다행히도 오전에 친 신체검사와 필기고사를 무사히 넘긴 혜민이 면접실로 불려 들어간 것은 오후 두시 무렵이었다.

사회보존국(社會保存局)에서 나온 다섯 명의 면접위원이 수사관처럼 앉아서 방안으로 들어서는 혜민을 쏘아보았다.

"전 혜민씨. 넌픽션과 창작을 겸하는 글일꾼[作家]이로군요. 그런데 왜 서른 세 살씩이나 되어 아이를 낳겠다는 거예요?"

입이 뾰족한 여자 면접위원의 질문을 시작으로 심문과도 같은 물음들이 계속되었다."담배를 피우고- 술도 하시는군. 글 쓰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짐작되지만 괜찮겠소? 임신기간 금연 금주를 지킬 수 있겠는가 말이요?"

"당신은 일을 선택한 여자요. 출산 후에도 아이를 일에 우선시킬 수 있겠소? 택일관계가 되면 언제든 글쓰기를 버리고 아이에게로 갈 각오가 되어 있소?"

"성(性)도 절제하여야할 것이오. 임신중 태아 보호를 위해서나 출산 뒤뿐만이 아니오.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도 절제는 필요하오…".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면서 주의도 주고 다짐도 받더니 갑자기 자기들끼리의 합심(合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들이 혜민을 보며 입을 모아 선언했다.

"전 혜민씨. 아무래도 안 되겠소. 당신과 태아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당신의 출산은 허락될 수 없소. 당신은 일하는 여자로 충실하시오".

"안돼. 그럴 수는 없어요.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아이를 낳고 말거야…".

혜민은 그렇게 소리치며 몸부림을 하다가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창밖이 훤한 낮이었다.

누운 것은 자신의 침실이었는데 머리맡에는 태아의 이상을 알리는 초음파 사진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

주치의 삼아 다니는 대학병원 산부인과 강박사가 준 것이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혜민의 귓전에 몇 시간 전 강박사가 한 말이 꿈결처럼 떠돌았다.

"이번은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날 받아 조처하셔야겠어요. 그리고 - 꼭 아기를 가지고 싶으면 잠시 일을 그만두고 공을 들이세요. 특히 담배 술 끊고, 과로하지 마시고…아이 낳는다는 거, 이거 작은 일 아닙니다.

앞으로는 시험쳐 따야할 면허 같은게 될지도 모른다구요".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당선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 문단데뷔

△1994년 세종대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부악문원대표

△소설집=사람의 아들, 그해 겨울, 젊은 날의 초상, 금조, 어둠의 그늘, 레테의 연가, 영웅시대,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구로아리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변경, 삼국지, 수호지 등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장. 21세기 문학상. 호암예술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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