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들이 보는 한국

입력 2003-03-28 1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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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이라면 좋을텐데…"(I wish I were a North Korean)

이라크전쟁 발발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등장했던 피켓 문구다.

'대량파괴무기'를 개발 중인 '독재정권' 북한을 제쳐놓고 유엔 사찰 결과 대량파괴무기 보유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이라크를 먼저 공격하려는 미국의 이중기준을 꼬집는 것이었다.

이 시위에 참가했던 요르단인 알라 디아브(29)씨는 "시위대 모두가 아주 재미있어 했다"고 무심코 말했지만 기자는 그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었다.

비록 풍자일지라도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미국의 공격 1순위는 북한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풍자를 제외하면 대다수 아랍인들은 중동과 한반도는 동병상련이라면서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분위기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등을 돌며 만났던 수많은 이라크인,요르단인,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이 전시 상황에 놓여있어서인지 한반도 위기를 훨씬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이라크 전쟁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강한 끈으로 연결된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 아드난 조울라니씨는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하고픈 유혹의 대상이 북한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함께 평화의 손을 잡자고 제안했다.

요르단 암만에서 만난 가톨릭 사제는 먼 나라 한국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아 인터뷰에 응해준 뒤 헤어질 때는 "미국의 다음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요르단 주재 이라크 대사관 관계자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미국을 지지하는 한국은 인도주의를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요르단대 학생들도 "한국은 왜 전쟁을 지지하느냐"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가 수십만이 참가하는 반전 시위가 열리고 있다고 알려주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한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암만의 가톨릭 성당 앞에서 만난 한 중년신사는 한국정부의 전쟁 지지에대해 반대 여론이 높다고 하자 '선한 국민, 나쁜 정부'(Good people,bad government)라고 표현했다.

다행인 것은 전쟁 발발 이후 한국내의 반전 시위와 바그다드와 암만을 오가는 한국인 반전운동가들의 시위는 이곳 아랍권에 한국인들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에서 만난 여대생들은 "한국인들이 반전시위를 하면서 미 대사관으로 진출하기위해 경찰과 격렬히 싸우는 것을 방송에서 보았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요르단 암만에서 최근 열렸던 반전 시위에는 한국 반전평화팀원들이 대열의 선봉에 서서 현지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도로 점거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아랍인들은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거리에서 만나면 눈 인사를 보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김승일기자 dojun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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