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해 물 이야기-(중)지하수 시대

입력 2003-03-28 09:21:52

지하수를 '천혜의 자원', '마지막 수자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 뿐이다.

정부든 국민이든 지하수 보전 및 관리, 사용에 대한 관심도 없다.

필요하면 무작정 땅을 뚫어 지하수를 퍼올린뒤 그냥 놔두면 된다는 식이다.

농림부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지난 30년간 개발한 관정 60만여개 가운데 90%가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리 소홀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한다.

가뭄, 농업용수 등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개발한뒤 방치하거나 멋대로 폐공해 지하수를 고갈·오염시켰다.

전문가들은 적정 개발량 범위내에서 지하수를 체계적으로 개발·이용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엄청난 공사비가 들어가는 댐건설에만 집착하고 있을 뿐 경제적이고 양질의 지하수 관리·이용에 대한 투자엔 손을 놓고 있다.

물이 부족하면 '댐 몇 개 더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주유소에서 경유가 유출, 지하철 공사장내 지하수를 오염시킨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관할 대구 달서구청은 올초 서울대 부설연구소 등에 정밀조사를 의뢰, 인근 주유소의 경유 배관 파손으로 매일 20ℓ의 경유가 유출된 사실을 밝혀냈다.

유출된 경유는 주유소 일대 토양을 오염시킨뒤 지하로 스며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는 지하수가 오염원으로부터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는지, 지하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한번 극명히 드러냈다.

현재의 지하수 보전 및 관리 체계론 지금도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하수 관리 대책이 시급하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지하수 외면

지하수는 지표수와 달리 직접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인지 '있는 둥 마는 둥' 푸대접 받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지하수 관련 예산은 92억원으로 수자원 관리 및 개발에 대한 전체 예산 1조 7천억원의 0.5%에 불과하다.

관리는커녕 기초조사 비용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지하수질 개선비 항목 조차 없다.

대부분 댐 건설이나 상수도, 하천 정비 관련 예산으로 책정됐다.

무조건 하천과 댐에 의존, 수자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또 지하수법은 건설교통부, 온천법은 행정자치부, 먹는물 관리법은 환경부, 농어촌 정비법은 농림부에서 관장하는 등 지하수 관련법이 각 부처로 분산돼 있다.

당연히 종합적이고 일괄적인 지하수 정책이 있을리 만무하다.

지난 1980년대 이미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건교부를 환경부로 흡수시켜 정책을 일원화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하수 전문가들이 머지않아 지하수가 주요 식수원이 될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조사 및 관리, 효율적인 이용 대책을 충고하고 있지만 '쇠귀에 경읽기'이다.

▲지하수 몸살

대도시 등에선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이유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반면 일부 지역에선 무분별한 개발과 이용으로 지하수가 심하게 고갈되거나 오염돼 이미 수자원으로서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실제 2000년 기준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지하수 이용량이 개발가능량을 초과한 지역이 14곳에 달했다.

이가운데 대구지역의 경우 남구 230%, 서구 191%, 중구 287% 등 3곳이 개발가능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6년 전국 전체 초과 수와 맞먹는 수치다.

또 지난해 전국 4대강 유역의 지하수관측망에 대한 수질검사 결과 대구·경북지역 26곳 중 대구 비산동을 비롯 6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최근엔 민간은 물론 행정기관까지 신규 지하수 정호 개발시 물량 책임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정을 뚫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양수시험 자료를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영남자연생태연구소 이진국 박사는 "일부 지역의 지하수 고갈 및 오염은 행정기관의 무사안일주의, 전문인력 부재로 인한 기술행정공백, 개발자의 수주경쟁에서 비롯됐다"며 "지하수 전문인력을 확충해 지도·관리·감독은 물론 보고서도 심의하는 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수 현황 파악도 안돼

지하수법이 제정, 발효된지 10년이 됐지만 지하수 정책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정부는 대략적인 지하수 개발·이용 현황만 파악하고 있을 뿐 지하수질 상태나 지하수 시설, 부존량 등에 대해서 제대로 계측하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에 따르면 2001년말 기준 지하수 부존량은 150여억t(제주도 제외), 개발가능량은 130여억t, 이용량은 32억t 정도. 신고·허가된 지하수시설은 111만여개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체 시설의 30~40%에 불과, 최대 300만개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대구시내에 설치된 지하수 관정도 신고된 것만 4천833개소. 그러나 불법 시설 및 방치된 폐공 등까지 합하면 2만여곳 정도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산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성익환 박사는 "정부가 발표한 부존량이나 개발가능량, 이용량은 대충 짐작한 추정치로 국가 정책에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성호 대구시 수질관리과 과장은 "올해부터 2년간 14억원을 투자, 지하수 부존량 및 개발 가능량, 지질·대수층, 오염취약성 등을 평가·분석해 수문지질도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하수 이용 활성화 해야

지하수는 하천수 등 지표수에 비해 오염 위험성이 낮다.

증발·손실의 우려도 없고 홍수와 가뭄에 적극 대처 가능하다.

또 하천 고도정화시설, 댐건설 처럼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양질의 수자원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하수 이용량은 추정치인 건교부의 통계를 따르더라도 연간 32억t 정도로 전체 이용 수자원의 10% 정도다.

또 이용 가능한 지하수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익환 박사는 "상당수 지하수는 멸균만 시켜도 고도정수처리된 하천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질이 뛰어나 바로 음용수로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독일 뮌헨의 경우 음용수를 100% 지하수로 사용하는 등 유럽 국가들은 음용수의 70~100% 정도를 지하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호주도 음용수의 90%이상을 지하수로 쓰고 준사법권을 가진 지하수 관리 감시관까지 두는 등 지하수를 철저히 관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진국 박사는 "원활한 수자원 확보 및 이용을 위해서라도 풍부하고 양질의 지하수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며 "지하수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선 우선 유명무실화된 지하수법을 제대로 적용, 지하수 고갈과 오염의 원인인 무분별한 개발과 허가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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