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에 최고령 극단 은빛 있었네

입력 2003-03-27 09:58:59

은빛 연극단(단장 석명도).

65세 이상 노인 15명으로 구성된 연극단이다.

한국 연극 사상 최고령 단원으로 구성된 실버극단. 단장은 77세, 주연(김용준)은 79세, 연출(임재숙)은 74세다.

경북 영덕군 노인회 소속이다.

"경로당에 모여 화투나 치고 막걸리나 마시는 것보다 백배 낫지". 석 할아버지는 "뭔가 젊고,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극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 2001년 창단했다.

첫 작품은 '이 대감 망할 대감'. 그 해 10월 1일 노인의 날에 공연했다.

이날 군민회관에 모인 500여 명의 관객은 노인들이 펼치는 색다른 연극에 감탄했다.

무대래야 병풍 하나 친 것이 고작. 배우로 무대에 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능청스런 연기와 춤으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공연 이후 자녀들이 꽃다발을 선사하고, 연극의 평도 좋아 새로운 인생의 맛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인근 지역에 소문이 퍼져 지난해에는 강구, 영해 등에서 10여 회 초청 공연을 가졌다.

'이 대감 망할 대감'은 조선시대 양반을 풍자한 작품. 여러 첩을 둔 양반이 하인의 아내를 탐하려다 혼이 난다는 줄거리. 양반역을 맡았던 김용준 할아버지는 "언제 남의 부인 손목이라도 잡아 보겠어. 남세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장히 재밌더라구"라고 했다.

주연을 맡은 김 할아버지는 영덕군 일대의 연극 스타가 됐다.

이달 초부터 신작을 준비중이다.

제목은 '원놀이'. 조선 영조시대를 배경으로 고을 원님이 시집 못 간 세 처녀의 원을 달래주려고 만든 놀이다.

일주일에 두번 노인회관에 모여 연습한다.

단원들이 모두 고령이라 대사를 외우는 것이 힘들다.

그래도 무대에서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연극의 내용이 모두 겪었음직한 얘기라 애드 리브(즉흥연기)가 가능하기 때문.

석 할아버지는 "제작비가 없어 무대를 충분히 꾸미지 못하는 것이 어려움"이라고 했다.

분장은 군청 여직원이 자신의 화장품 세트로 하고, 화분이나 병풍, 옷이나 괴나리 봇짐은 모두 단원들의 집에서 가져다 쓴다.

달도 손자.손녀들이 그려준 노란 종이가 전부다.

생각다못해 지난달에는 경북도 무대지원금을 받기 위해 심사를 넣었지만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연극협회에 등록되지 않았고, 직업으로 하는 연극인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 그래도 박현순 대구연극협회장이 "의상과 세트, 분장, 연기 지도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큰 위안이다.

뒤늦게 시작한 연극인생. 이구동성으로 "이런 게 있었나 싶었다"며 연극을 하길 잘했다고 했다.

영덕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연극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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