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잊혀진다는 아픔에 대하여

입력 2003-03-26 09:44:15

2003년 2월 18일 아침 평화로운 대구의 아침은 중앙로역 지하철 방화사건으로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 비탄과 통곡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기억에도 다시 떠올리기 싫은 95년 4월의 상인동 가스폭발참사의 악몽이 중앙로 역사 검은 터널속 유독가스와 함께 솟구쳐 오른다.

안전을 맹세하고 맹세하던 그때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역사의 법정은 중앙로역 참사라는 판결을 통해 지난 8년간의 무사안일을 '중과실치사'로 준엄하게 심판하고 있다.

촛불, 국화꽃 들고 검은 리본 단 우리 모두가 중죄인이라면서. 화마(火魔)와 유독가스가 휩쓸고 간 중앙로역사는 지금도 숨이 막힐 듯한 공포와 기괴함으로 가득하다.

애절하게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곡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억울하게 가신님들의 비통한 비명소리와 차마 보내지 못하는 남은 사람의 피눈물이 "대구를 안전의 성지로 만들라, 다시는 잊어버리지 말라"는 호곡성(號哭聲)이 되어 외친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사고 수습 과정은 한마디로 엽기적이다.

안심기지창에서는 희생자의 유골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었다.

사고 현장을 심각하게 훼손하여 고인을 한번 더 죽게 한 현장훼손의 책임자와 진상은 아직도 실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안 찾는지 못 찾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 엄청난 참사의 현장을 애써 외면한 채 무심한 지하철은 참사 다음날부터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다.

불에 활활 타는 내장재를 그대로 둔 채 달려가는 지하철을 두고 대구시는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하철이라고 자랑한다.

최소한 사고 후 대구시에서 발표한 8쪽짜리 지하철 종합 안전대책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또 이제는 그만 잊자는 소리가 힘을 얻고 여론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무엇이 바뀌었으며 규명되었는가. 지하철은 안전한가.

노숙자 아닌 노숙자가 되어 참사현장을 지키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위로받아야 할 저분들이 계란을 들고 죄 없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는 현실을 그 어떤 이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유가족들은 너무나 빨리 잊혀지고 있는 이 사회가 도무지 낯설다.

지상에서는 무심한 가로수에 새싹이 돋고 개나리도 노란 꽃을 피우며 환하게 웃고 있다.

지하철 참사현장을 뛰어 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아내와 갓 입학한 아들이 돌이 채 안된 막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자고 있는 아들의 평화로운 얼굴을 보니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 우리 아이들과 내 아내는 무사하구나" "그래 최소한 나는 저 비극의 현장에서 한발 비켜있구나".

어떻게 하면 이 위험도시에서 우리 아이들과 아내와 내 목숨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답이 없지만 노력할 것이다.

이번 지하철 참사의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한 지하철을 위한 철저한 대안이 나오는 그날까지. 실종자 가족들은 안전한 지하철을 만드는 것을 '고인이 대구시민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 두렵다.

시간이 없다는 강박관념이 그들을 몸서리치게 한다.

나는 죄없이 희생되신, 그래서 우리의 십자가가 되신 고인들로부터 '안전한 지하철'이라는 선물을 받고 싶다.

그리고 유가족들과 함께 내년 2월 18일에는 소주 한잔 '찐하게' 마시고 싶다.

또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도 고인의 희생과 유가족들의 투쟁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하철을 만든 디딤돌이 되었다고.

그리고 시민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하고 싶다.

불편하더라도, 돈이 많이 들더라도, 늦어지더라도, 안전을 위해서는 이제 우리 기꺼이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자고. 우리가 기꺼이 이 어려움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참사의 또다른 희생자가 되어 눈물 흘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제발 이젠 그만 잊자는 말은 하지 말자고. 오히려 우리는 두고 두고 이 참사를 기억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과 부상자의 쾌유를 빕니다.

김경민(대구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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