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포럼-바그다드의 딜레마

입력 2003-03-25 12:01:36

최근 어느 일간지 만평 내용. 이라크 병사를 포로로 잡은 미군 병사는 남루한 옷차림의 이라크 병사를 보고 속마음으로 "군인 맞나? 혹시 민간인 아닌가?"고 생각하고 이라크 병사는 온갖 최신 장비로 무장한 미군 병사를 보고 "미군 맞나? 혹시 우주인 아닌가?"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전쟁이 무엇이고 이에 따른 새로운 병사의 모습은 어떤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군인들은 때리지 않은 채 호크 미사일로 이라크 대통령 궁을 정확히 맞춰놓고는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죽었다느니 아니면 최소한 부상당했느니 하는 심리전까지 펴는 여유를 부렸다.

미사일 오차범위가 3m이내라니 그렇게 기고만장할 만도 하다.

정보화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작전이고 새로운 전쟁인 것이다.

앨빈 토플러가 '전쟁과 반전쟁'(93년 발간)에서 말한 제3의 물결 군대를 말하는 것이다.

'적국의 군사력을 직접 파괴하지 않고 통신시설과 에너지 시설 등 군사신경망을 파괴함으로써 적의 전력을 사실상 마비시키는 전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라크에서 그대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제2물결의 군대인 이라크 군으로서는 제3물결의 군대인 미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91년 걸프전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미 증명되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사막이든 산악이든 군대간의 정규전이라면 제3의 물결식 군대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군은 거칠 것이 없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라마단 이라크 부통령이 TV연설을 통해 "시민과 이슬람교도들은 이라크 방위를 위해 몸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도 작전에 동원하는 인간방패 전술을 포함한 제1 물결식 전략으로 바꾼다면 문제는 생긴다.

이렇게 되면 제3의 물결 군대인 미군은 선택적 파괴라는 제3물결식 전투를 할 수 없게 된다.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인 피해가 많으면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에 의한 세계평화)를 위한 중동질서 재편이 무의미하게 된다.

즉 후세인 제거를 활용하여 중동지역에 왕정국가나 독재정권을 민주주의 정권으로 바꾸어 놓는다해도 반미국가들만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1물결식인 백병전 형태의 시가전을 치른다면 이번에는 미군의 피해가 늘어 지난번 소말리아 실패 때처럼 미국 내 반전여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도시 게릴라라는 제1물결식 저항 앞에 사령부 파괴라는 제3물결식 작전이 무슨 힘을 발휘하겠는가. 이래 저래 반전물결은 잠재울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의 '바그다드 딜레마'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미국이 사전에 몰랐을 리 없다.

명분 없는 전쟁이라느니, 석유전쟁이라느니, 패권추구 전쟁이라느니 하는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쟁을 강행한 것은 미국식 세계 평화를 구축하고 나면 명분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미국식 논리다.

하기야 미국으로는 아무도 견제할 나라가 없는 일극체제(一極體制)인 이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도 정보화시대의 흐름이기도 한 세계화라는 깃발을 통해서. 따라서 세계화에 걸림돌인 테러에는 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러한 분위기임에도 이라크는 테러 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나하면 91년 걸프전 이후 UN안보리가 결의한 대량살상무기 폐기 등을 잘 이행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9.11테러 때는 '미국이 자행한 범죄의 대가'라고까지 했다.

이러니 이라크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다해도 전쟁을 일으킬만한 수준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굳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라크를 공격한 명분 중에는 위험을 막기위해 선제공격 한다는 일방주의적 논리이다.

미래학자인 토플러의 논리 중에서도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작은 전쟁은 반(反)전쟁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지금 미국은 이렇다.

이렇게 본다면 바그다드 시가전에서는 망설임 없이 많은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정공법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어떻든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미국의 독선적이고도 적극적인 개입주의 앞에 서 있다.

여기서 우리는 파병을 하는 것이 국익인가 안 하는 것이 국익인가. 물론 파병론도 반대론도 모두 애국이다.

다만 파병을 한다면 명분을 잃고 안 한다면 실리를 잃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결국 외교는 현실이 아닌가. 참여정부의 선택이 옳다.

주필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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