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돼지콜레라 충격 경주

입력 2003-03-24 12:44:10

"이라크 전쟁으로 세계가 야단들이지만 우리 축산농가들은 돼지 콜레라 확산을 막는 것이 더 급합니다" .

돼지 사육두수가 도내 1위인 경주지역 축산 농민들은 콜레라에 감염된 돼지가 경주를 비롯, 전국 곳곳에서 살처분당하자 참담함과 함께 얼굴에 분노감마저 역력했다.

22일 경주시 서면 정모(44)씨 농장에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돼지 940여마리가 생죽음을 당하는 참혹한 장면을 지켜본 이웃 주민들은 이번이 처음이고 마지막이 되기를 두손 모아 빌었다.

농민들은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방금 출산한 새끼돼지 이빨을 잘라주는 것도 포기한 채 통제선 밖에 삼삼오오 모여 어떻게 해야할지 한숨 섞인 말을 주고받으며 일어설 줄 몰랐다.

돼지 콜레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농민들은 지난해 김포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손을 쓰지 않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됐다'면서 당국을 크게 원망하고 있다.

경북도내에서는 처음으로 경주에서 진성 추정 돼지 콜레라가 발생했다는 소식(본지 20일자)이 전해졌을 때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던 농민들은 돼지 콜레라 확산 소식속에 살처분 현장을 보면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인 돼지 콜레라 확산은 그동안 일본 수출을 겨냥, 청정국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콜레라에 완전 노출돼 있었던 것이 화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말 김포에서의 돼지 콜레라 발생으로 청정지역이 물 건너 갔는데도 즉시 백신접종을 하지 않고 발생지역의 씨돼지를 전국에 분양한 것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축산 농가들은 돼지 콜레라는 예방접종만 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데도 청정지역을 앞세워 무리한 정책을 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뒤늦게나마 콜레라 예방백신 접종이 시작돼 그나마 다행이란 농민들은 지난해 말 김포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전국적인 예방접종 판단 없이 무대책으로 일관한 데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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