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화랑 현주소

입력 2003-03-24 09:20:02

화랑(畵廊)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시내를 가다보면 '화랑' '갤러리'라는 간판이 곳곳에 눈에 띈다.

액자.표구점이나 이발소그림(투박하고 조야한 상화)을 파는 곳도 '화랑'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림을 파는 곳'이라는 일반적 개념에 따르면 모두 화랑이 맞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화랑이라 하기 어렵다.

창작물(화가들의 예술적 작품)을 보여주고 판매한다는 전제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화랑의 역할과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만 미술품을 감상하고 즐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화랑도 천차만별=화랑도 '대관전시'와 '기획전시' 등 전시방식에 따라 차별성이 뚜렷하다.

대관전시는 화랑에서 돈을 받고 일정기간(6~12일) 전시공간을 작가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화가가 스스로 기획과 전시, 도록제작, 판매까지 도맡는 '한국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대구에서는 '대백프라자 갤러리'가 인기있는 대관 화랑으로 꼽힌다.

'기획전시'는 화랑측이 작가나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 전시하는 것이다.

유명작가의 작품발표, 유망한 신인작가의 발굴 등으로 미술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시다.

대구의 30여개 화랑 중 '대관전시'와 '기획전시'를 절충하는 곳이 상당수지만, 한쪽에 크게 비중을 두는 화랑은 각각 절반 정도. 이태 시공갤러리 대표는 "화가의 실력을 정확하게 가늠하려면 전시회를 몇차례 가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화랑에서 어떤 전시회를 가졌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화랑이 실력있는 작가를 골라 기획전시를 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관전시'를 하는 화가가 화랑의 양해를 구해 '기획전시'인 것처럼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창출소인가 상업공간인가?=국내 화랑들은 지나치게 돈을 버는데 무게중심을 둔다는 얘기를 듣는다.

소위 잘 팔리는(?) 작가를 어느정도 확보하고 있는가에 따라 화랑의 명성이 좌우된다.

대구에는 자본력을 앞세워 미술품을 대량 유통하는 화랑도 없고, 뛰어난 화가를 전속으로 지원하는 화랑도 거의 없다.

자본력이나 기획력 측면에서 '구멍가게'수준에 머물러 있는 화랑이 상당수다.

최근 '이현갤러리' '두산갤러리' '갤러리M' 등 신생 화랑들이 의욕적인 기획과 전시로 지역 미술계에 큰 활력을 주고 있지만, 신인작가 발굴에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7년째 화랑을 운영하는 김태수 한국화랑협회장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면 좋은 화랑이 되기 어렵다"면서 "미술문화의 창출, 신인작가의 발굴 등 문화적인 측면을 항상 고려해야 튼튼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랑은 어려운 사업?=대구에 최근 2,3년동안 몇개의 화랑이 문을 닫고, 몇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그정도로 부침이 심한 것이 바로 화랑업이다.

문화를 매개로 한 품위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각광을 받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게 화랑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무척 고통스럽다.

90년대 중반이후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화랑들은 활동폭을 크게 줄였다.

가급적 기획전시를 줄이거나, 장기간 전시를 않고 공간을 놀리는 곳도 여럿 있다.

지난해초 화랑 문을 연 김창범 두산갤러리 대표는 "지난 1년간 한번에 몇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기획전을 10여차례 열었지만, 전체 수익은 말하기 부끄러운 정도"라면서 "4,5년후를 내다보고 꾸준하게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구 화랑들은 불과 몇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빈사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한 화랑대표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그만뒀을 것"이라면서 "불안한 지역경기로 인해 앞으로도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게 더 큰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화랑 문을 새로 열거나 이를 준비하는 이들이 꽤 있다고 하니 화랑은 상당히 매력있는 업종인 것은 분명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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