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고생고생해 모은 재산을 고향에 투자하기로 맘먹은 경북출신 사업가 전모씨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한국 호박을 일본땅에 가져가 심었더니 세월이 흐르면서 그 씨가 변했는지 색깔도 모양도 맛도 다른 이상한 호박이 됩디다.
그래서 아, 이거 안되겠다 싶데요…" 그가 딸이나 다른 아들은 하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큰 아들만은 고국에 보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F2, F3…로 내려갈수록 자꾸만 달라져 보이는 호박때문이었다.
인물과 풍토(風土)의 '상관관계'도 그렇게 성립되는 것이었다.
'풍토'가 인물 만든다
우리는 지난해에 경험을 했었다.
총리후보의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한답시고 건국이래 처음 인사청문회를 해봤더니 흠없는 자 하나도 없었다.
"누구 죄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성경속의 말씀 그대로였다.
대학총장.언론사회장.대법관출신도 다 소용없었다.
정도의 차이였을 뿐이었다.
풍토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사정이 이런 것을, 풍토는 쏙 빼놓고 사람만 달랑 청문회에 올려놓으니 올라오는 사람마다 개인의 치부만 다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성과 전문성이 뛰어나다고 발탁한 김두관 행자부장관 진대제 정통부장관도 도덕성에선 엉터리였다.
엉터리 였는데도 대통령이 붙들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자존심이다.
그들의 장점을 더 크게 보고 더 높이 샀다는 첨언은 군더더기일 터이다.
사실 대통령도 고민이 아닐 수는 없다.
"고르고 골랐는데, 이 사람들은 확실하게 믿었는데…" 아버지 말만 믿고 뜨거운 목욕탕에 텀벙 따라 들어간 여섯살 아들의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정치풍토, 조금씩은 공범(共犯)의식에 젖은 이 사회풍토에서 대통령의 용병(用兵)은 그만큼 어렵다.
"죄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해봤자 칠 사람 아무도 없는 이 정치 풍토에서, 임기를 '법으로 보장받은' 김각영 검찰총장과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최근 목이 날아갔다.
형식이야 자진사표지만 실상은 사표를 강요받은 것이다.
억하심정일 수 있겠으나 그들이 잘났다면, 공직자로서 눈총받을 처신을 안했다면 말타고 가다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 총장은 취임당시부터 자질시비가 있었고 '대북송금 수사유보'로 내부신망마저 떨어졌음에도 자리에 연연했던 미련죄, 그리고 공정.금감위 두위원장은 현대상선 불법대출 조사기피와 대북송금 연루의혹으로 소위 '경제검찰'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눈치죄가 있었다.
그래서 십구무언(十口無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명색이 법이 보장한 임기제 공직자를 사실상 강제로 옷 벗기는 쪽, 그리고 옷 벗김을 당하면서도 여론의 동정조차 사지 못하는 쪽의 두쪽 모두에 호된 평가가 없을 수 없다.
법으로 보장해놓고, 알아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목표물(?)을 흔들어 대는 것은 우선 '원칙'에서부터 어긋나 있다.
대통령 스스로 원칙의 편임을 강조하면서 밑에선 개혁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쫓아내듯 하면 자기모순이다.
이것은 세사람 공직자의 처신의 결함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실 검찰총장과 두 위원장의 임기는 각기 2, 3년이라서 5년 임기의 대통령과 같은 시점에서 끝나지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이들의 생사가 결정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럴 판이면 차라리 임기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임기보장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에 앞서 이들 '임기제 공직자'의 처신이 추상(秋霜)같아야 함은 무엇보다 제1의 조건이다.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청렴.공정의 자세를 견지하는 길, 그것밖에 없다.
"No"할수 있는 용기만이…
그런 의미에서 검찰의 쓰라린 경험은 이제 약이 돼야 한다.
검찰총장 임기제가 명문화된 이후 1993년, YS가 취임 3개월밖에 안된 김두희 총장을 법무장관에 전격 발탁했을때 그는 임기제를 들어 "노(NO)" 했어야 했다.
검찰로서는 이게 꿀이 아니고 독(毒)이었다.
그때부터 10명의 총장중 6명이 도중하차하는 정치적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뒷짐지고 있던 후배검사들이 공개토론에서 달겨들어 봤자 그것은 때늦은 후회였다.
"노(NO)" 해야 할 대목에서 "노!" 할수 있는 용기-임기보장은 법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경험이 증명한 것이다.
강건태(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