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이 새 삶 찾아줬어요

입력 2003-03-20 11:14:59

"재원이는 이웃들이 살렸습니다.

엄마인 저는 손도 못썼는데…. 이웃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도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재원이를 키우겠습니다".

혈액암의 일종인 '혈구탐식증'으로 동산병원에서 두 달간 항암치료를 받고 지난 5일 퇴원한 백재원(13.학산중 1년)군의 어머니 배화자(44)씨는 "아이가 큰 병에 걸려도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 손 쓸 방도가 없었다"고 했다.

이 병은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이 파괴돼 면역기관과 장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것. 게다가 재원이는 척추 괴사와 류마티즘까지 앓고 있다.

대구 월성주공아파트에 사는 재원이네는 국민기초생활 수급 가정. 10년간 알코올 의존 증세를 보여 온 남편(49) 탓에 생계는 고스란히 배씨의 몫이었다.

월 60만8천원의 국가 지원금은 재원이 누나(16) 학비.식대, 아파트 관리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아이가 아프고부터 배씨는 시간당 2천~2천500원 받던 식당 일마저 그만둘 수밖에 없어 병원비는 고사하고 생계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런 재원이네에 빛이 되어준 것은 이웃들이었다.

재원이의 모교인 학산초등학교에서는 교직원들과 640명 전교생이 돕기 운동을 벌여 이틀만에 550만원이라는 거액을 모았다.

고사리손이 낸 100원짜리 동전에서부터 딱한 처지에 공감한 학부형의 10만원 짜리 성금까지 모였다.

학산초교 김창순 교감(55)은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이지만 이제껏 학교에서 했던 어떤 이웃돕기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성금이 모여 교직원 모두가 놀랐다"고 했다.

이 돈은 담임선생님을 통해 지난달 14일 재원이네에게 전해졌다.

재원이네의 사정이 구청을 통해 알려진 뒤 동네 아파트 이웃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주민들은 아파트 승강기 문 옆에 재원이네를 도와 달라는 초등학교장 명의의 안내문을 붙여 42만원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진천동에서 당구장을 한다는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구청을 통해 180만원을 재원이네에 전했다.

달서구청도 30만원의 긴급구호비를 마련했다.

이웃들이 보내준 성금은 도저히 마련할 길 없어 보이던 병원비 500여만원을 해결해 주고도 남았다.

10개월 가량 밀렸던 아파트 관리비까지 갚을 수 있게 해 이웃 보기도 덜 미안해졌다고 어머니 배씨는 말했다.

"고생하신 엄마를 편하게 해 드리겠다"며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정도로 재원이의 마음 씀씀이까지 훌쩍 컸다.

그러나 재원이네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퇴원 후에도 재원이는 통원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고, 만 20세까지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병원측은 말했다.

또다시 목돈이 필요한 때를 대비해 어머니 자신은 하루 한두끼는 꼭 라면으로 떼운다고 했다.

학산복지관측은 재원이네가 자립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려 애쓰면서 재원이네 결연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053)634-7230(학산복지관).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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