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을 위해

입력 2003-03-20 11:14:59

우리 사회에서 외형적으로나마 복지 분야만큼 근래 많이 성장한 것도 없다.

이에 따라 이 분야를 주도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들의 헌신성 정도에 따라 '함께 사는 사회'의 풍향도 달라질 정도.

함께 살기의 첨병으로 뛰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장애인을 내 몸 같이

배봉숙(27.여)씨의 새벽은 분주하다.

한 방에 자는 10명을 하나하나 깨우고 세수.양치질부터 화장실 가는 일까지 한시도 눈 뗄 수 없이 돌봐야 한다.

이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미혼 여성 장애인들. 아침을 먹은 장애인들은 바로 옆 '성보학교'로 등교하거나 직업보도실에서 구슬꿰기.재봉 등을 배운다.

몸이 더 불편해 학교에도 못가는 경우는 배씨가 종일 돌봐야 한다.

틈틈이 방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야 하고 허리 펼 틈 없이 빨래며 식사 준비를 해야한다.

장애인들을 목욕 시키는 것도 배씨 몫. 저녁이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아 만화영화나 시트콤을 본다.

장애인들을 재우고 나면 밤 11시가 넘는다.

배씨가 7년째 이같은 생활을 계속하는 곳은 지체장애인 시설인 복지법인 '성보재활원'(대구 복현2동). 1952년 설립된 이곳엔 190여명의 언어.지체.정신 지체 장애인들이 75명의 생활재활 교사들과 함께 살고 있다.

1997년 3월, 21세의 나이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배씨는 교사 중 막내였다.

그만큼 할 일도 많았다.

명절이라고 집에 들르기도 힘들 정도. 가족들은 "그만두고 나오라"고 딸을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도 김치나 생활용품을 챙겨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본인도 이젠 가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방문객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변했다.

2년 전까지는 24시간 근무제로 '퇴근'이라는 것이 없었으나 지금은 주야 2교대로 바뀌었다.

정부가 전국 장애인 시설의 24시간 근무제를 2001년 4월 시정한 덕분. 30명이던 이곳의 복지사 수도 그 때 배로 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배씨의 하루 생활도 24시간 근무 때의 모습. 지금은 그 반을 맡는다.

그래서 지금 배씨는 근처 언니네 집으로 퇴근하기도 하고, 한달에 5일은 쉴 수도 있게 됐다고 했다.

◇열악한 처우

이렇게 생활을 전부 바치다시피 해 가며 장애인들을 돌보는 배씨의 연봉은 1천300만원 가량. 업무량이나 근무 연공에 비하면 한참 적다.

그러나 배씨는 월급에 그다지 매달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월급 나왔나 보다'고만 생각합니다.

적어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해본지 오래 됐습니다". 그 월급마저 장애인들의 머리핀이나 셔츠.간식 등을 사는데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2003년 사회복지 생활시설 종사자 봉급표'에 따르면 사회복지사의 정부 부담 보수는 월 65만6천원(1호봉)~129만4천원(30호봉). 여기다 소속 기관으로부터 받는 수당.상여금을 합하면 초임 연봉은 평균 1천200만원(세금 공제 전) 가량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4년차가 받는 연봉 1천450여만원은 같은 연차의 초등학교 임시교사 연봉 1천900만원의 76% 정도이고, 10년차 연봉은 10호봉 공무원(8급)의 83%(1천867만7천원)에 해당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일부 대형 복지기관에서는 대졸 초임으로 1천900만원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구 평균은 그보다 훨씬 낮다는 것.

그런데도 복지관 근무자 등은 주 50~55시간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지고 있다고 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낮에는 방문 서비스를 하고 밤에는 따로 후원자를 만나야 하는데다 복지관 인력이 적다보니 운전, 시설 개보수 작업까지 맡는 등 1인3역 이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관심 높아져야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현재 전국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는 6만8천여명에 이른다.

대구 경우 유자격자가 2천100여명이고 그 중 1천여명이 300여개의 복지시설이나 전담공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는 3천40명 있는 유자격자 중 1천300여명이 시설 73개소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의 주요 일터는 공직, 복지시설, 어린이집, 양로원, 재활원, 복지관, 병원, 시민단체 등.

그러나 낮은 보수와 과중한 업무로 남성 사회복지사의 60~70%가 전직하고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에 대해 숭실대 사회복지과 정무승 교수(44)는 "그만두거나 전직하는 사회복지사가 많다는 것은 인적 자원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구 서구제일종합복지관 정재호 관장은 "현재로는 사회복지사조차 도움받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극빈자일 수밖에 없다"며 "초등교사 수준으로 상향시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미국.호주에서는 복지시설 종사자 평균 연봉이 3만~3만5천달러로 공립학교 교사보다 높다"며 "우리도 대우 수준을 높여야 좋은 인재를 유입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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