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경주 교동

입력 2003-03-20 11:16:17

경주 시내 중심가의 남부, 월성 서쪽 남천을 앞에 두고 멀리 남산을 굽어보는 명당에 자리잡은 교동. 동쪽엔 계림과 남산, 북쪽은 대릉원과 이웃하고 있다.

계림의 울창한 숲과 고분군, 향교, 이끼낀 고가들이 있는 마을에서는 역사의 향기가 도처에 묻어난다.

원래 이 마을은 조선시대때 향교가 있다며 향촌으로 불려오다 면제(面制) 실시에 의해 교리로 불리고 있다한다.

한때 이 마을에선 최부자로 불리는 집이 30호가 넘었으나 지금은 최씨 외에도 박, 김, 이씨 등 타성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인 최 부잣집은 9대 진사에 12대 만석을 한 조선시대 양반집안.

경주 최씨 사성공예파 집성촌인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세거하다 정무공 후손 기영대에 와서 아버지(언경)를 모시고 아들 세린·세구와 함께 교동(현재 교동법주 기능보유자 집)으로 우거했다.

교동으로 이사올 때 이조리의 옛집을 이건해와 현재의 이 집은 기와와 건재의 나이가 350여년이 넘는 셈이다.

한때는 번창했던 이 마을도 지금은 세월의 흔적만 묻어날 뿐, 최 부잣집 후손 최용환(72·사업), 최인환(69·국제레미콘 회장), 최종환(62·국제레미콘 사장), 최경(59)씨 등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고택마다 꽃나무로 잘 가꾼 정원에 봄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해 이곳이 명당임을 짐작케 한다.

200~300년 이상된 전통 기와집이 10여채 . 이중 민속자료 27호인 최 부잣집 고택은 요석궁터로 알려져 있으며, 석재 상당수가 궁궐에 사용했던 석재다.

고택은 ㅁ자 모양의 건물로서 원래는 99칸 집이었다고 한다.

ㄱ자형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를 연속하여 지었고, 서당으로 사용하던 별당과 천석곳간·사당은 따로 건축했다.

사랑채와 별당은 지난 1970년 11월 22일 화재로 소실되어 안채와 천석곳간만이 남아 있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하여 '부불삼대(富不三代)'란 옛말도 있지만, 교동 최 부잣집은 이 기록을 깬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 집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석꾼이야 많지만 12대를 연이어 만석을 한 집안은 아마도 조선팔도에 최 부잣집뿐일 것이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좀처럼 깨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일 성싶다.

12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한 경륜과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 취재진은 고택을 찾을 때 그 점이 궁금했다.

마을을 돌아보면서 경주 최씨 가문을 빛나게 한 여러가지 원인들 중에서 가훈을 엄격히 지켜오면서 항상 가문의 뿌리를 중시한 데서 연유하였으리라는 일면을 느낄수 있었다.

가훈을 집약하면 이러하다.

첫째,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은 하지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벼슬이 높은 곳에 있으면 더욱 높은 것을 탐하게 되고 그 권세는 다시 오래가지 않아 밀려나게 되는 것이 세상사임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왔다.

학문을 숭상하되 권력을 탐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여 이 집안의 11대조인 정무공 손자대부터 1970년에 별세한 최준 선생에 이르기까지 9명의 진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소작료를 감면해주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등 인심을 얻은 부자로서 그 재산을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가훈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만석집안이었지만 은수저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백동 숟가락의 태극 무늬 부분에만 은을 박아 썼다.

과객 대접에는 후했지만 집안 내부 살림에는 검소했다.

좬삼베치마를 하도 오래입어 이곳저곳을 기워 입었지요좭. 한 며느리는 좬우리 할매들은 삼베옷을 누덕누덕 너무 많이 기워서 물에 옷을 집어넣으면 옷이 불어나서 솥 단지가 꽉찼다좭고 전한다.

최 부잣집 며느리들의 절약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이다.

만석은 주손 최염(69)씨 조부 최준 선생이 마지막이었다.

최염씨는 좬조부님이 인촌과 친했으며 인촌의 영향을 받아 교육사업에 뜻을 두고 전재산을 영남대학재단(구 대구대학)에 희사했다좭고 전한다.

최염씨는 또 자녀 2남1녀 중 장남(최성길·43·창원지법 판사)이 좬진사이상 벼슬을 못하게 한 가훈을 어겨 조상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좭며 웃는다.

최 부잣집은 비록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혼반은 영남 제일 명문가들이었다.

최염씨 6대 조모가 의성 김씨, 54대 조모는 진성 이씨, 증조모는 풍산 김씨, 어머니는 한강 정구 선생의 후예인 청주 정씨다.

그런가 하면 누님은 동계 정온 선생집의 종부로 시집갔고 둘째 누님도 서애 선생 종부이다.

이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쪽이 모두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이라서 최씨집을 우스갯소리로 '치마양반'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한다.

교동의 또 한가지 자랑거리는 전통술. 좬우리 집안에는 교촌 법주라는 특유의 술이 있어요좭. 최 부잣집 며느리 배영신(86·최염씨 재종조모) 여사는 교촌 법주의 맥을 이어오는 기능보유자. 아들 최경(59)씨와 며느리 서정애(57)씨도 어머니로부터 술빚는 비법을 전수했다.

'장맛을 내기는 쉬워도 술맛을 내기는 어렵다'고 하듯 좋은 술을 빚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같은날, 같은 재료, 같은 방법으로,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술독마다 술맛이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교동 법주 또한 350년동안 대물림하여 지금의 교동 법주 기능보유자인 배영신 여사가 60여년 법주만을 빚어왔어도 만족하지 않아 계속 연구하고 정성을 쏟고 있다.

또 술에 곁들인 주안상으로는 육포·어포·각종 전·집장·실과·약과·전과·다식·북어보푸림·사연지 등 특별한 것이 많고 여러 잔편도 곁들어 상차림이 푸짐하다.

집장은 콩과 밀을 띄운 메주를 갈아서 박·가지·무청·다시마·부추·닭고기·쇠고기 등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만든 장이다.

다식은 쌀·송화·깨 등을 갈아 만든 한과이고 북어보푸림은 북어포를 아주 잘게 찢어 양념한 것이다.

사연지는 교동을 세거지로 하는 경주 최씨 일족에서 대략 10대째 이어오는 가문의 고유김치이다.

그 담백하고 시원한 멋이 일품이다.

실고추에 버무린 갖은 양념 속을 배추잎으로 얌전히 싸넣은 사연지는 톡쏘듯 찡한 맛과 소담스런 때깔이 흡사 겨울철 별미 보쌈김치를 연상케 한다.

경주 최씨의 음식은 안주에서 뿐 아니라 제사음식도 특이하다.

제사에 올린 떡 종류만 해도 10여종이 훨씬 넘는다.

사랑채의 격식을 더해주는 이 집 정원의 고담한 멋이 전통마을의 체취를 더해준다.

취재진이 교동 법주 제조법을 설명듣고 대문을 나설때 쯤 며느리 서정애씨는 교동 법주를 빚는 정성으로 사랑채 정원을 매만지고 있다.

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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