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가 무기력증에 빠졌다. 당초 3월 임시회를 통해 지하철 사고 피해보상과 지원은 물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시의회가 유족들의 반발만 산채 19일 임시회를 마감했다.
시의회는 지난 11일 첫날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는 의원 6명이 나서 지하철 참사에 대한 대구시 책임론을 지적하면서 시의 위기관리 능력을 강도높게 질타하는 등 강한의욕을 보였고 6개월 시한의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특위를 구성하기도 했다. 또 피해보상 착수를 위해 관련 조례안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의회의 이같은 시도는 곧바로 벽에 부닥쳤다. 지난 12일 보상관련 조례안을 해당상임위인 경제교통위에서 통과시키고 나니 실종자 대책위가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14일 시의회를 점거한 실종자 가족들은 "시의회가 피해자 가족들과 한마디 협의없이 조례를 통과시켰다"며 "언제 보상해달라고 했느냐"며 강황 의장 등 10여명의 의원들을 억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의회입장에서는 인정사망심사위가 구성돼 곧바로 보상절차에 들어갈 경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조례안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서둘러 통과시킨 것이 엉뚱하게 화를 부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의회는 더욱 위축됐다. 곧바로 계획했던 피해자들의 지방세 면제를 위한 동의안도 17일 상임위에 상정조차 못했다. 보상관련 조례와 마찬가지로 실종자 대책위 등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 또다시 시의회가 유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가 유족 애로 해소에 능동적으로 나서기 보다 눈치보기에 급급해 진 것이다.
이는 지난 14일 유족들의 '실력행사'때 보인 시의원들의 실망적인 행태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실종자 대책위 일부 유족들은 강 의장 등을 억류한 상태에서 시의원 전원을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 중앙정부 지원에 이의를 제기한 지난달 27일 의회 명의의 성명과 보상관련 조례안 통과 경위를 시의원 전원에게 따져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강 의장과 10명의 의원들이 유족들로부터 억류당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이에도 상당수 시의원들은 이를 외면했다. 당시 의회 분위기를 전해들은 일부 의원들은 아예 휴대전화도 받지않았고 외지에 있다거나 병을 핑계로 동료의원들의 수난을 나몰라라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회 입장을 두둔했던 이상기 의원은 유족들로부터 폭행까지 당했다.
의회 관계자는 "대구시가 유족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회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두둔했지만 민의의 대표기관을 자처하는 시의회의 최근 행태는 '책임방기'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