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지 않는 대구지하철참사 악몽

입력 2003-03-19 0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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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지하철 참사'. KBS 1TV는 21일 영상기록 병원24시를 통해 지하철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담은 '2.18 대구, 끝나지 않은 악몽'(밤 12시)편을 방송한다.

2월 18일 오전 9시 55분. 대구시 중앙로역이 한순간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고 중앙로역은 공포감으로 술렁거렸다.

그때 맞은 편에서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불길 옆에 열차가 멈췄다.

유독가스는 점점 숨통을 죄어왔지만 지하철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엄청난 참사의 시작이었으며 아수라장이 된 전동차 안에는 한 모자가 타고 있었다.

1080호 열차에 타고 있던 이동석(24)씨는 문경에서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온 어머니(고명순.50)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열차 내에 가스가 차 오르면서 숨이 가빠지고 있었지만 기다리라는 안내방송만 들렸다.

동석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 열차를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때 마침 주변에 있던 한 남자가 문을 열었다.

두 모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맞서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동석씨는 인파에 밀려 꼭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동석씨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연기속으로 다시 뛰어들었고 그후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졌고 어머니는 무사히 119 구조대원에게 구조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동석씨와 엄마를 기다린 건 기나긴 병원생활이었다.

기도화상으로 호흡이 곤란했고 성대를 다쳐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래를 뱉을 때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시커먼 그을음이 함께 올라왔다.

사고에 대한 공포로 쉽사리 잠도 이룰 수 없는 게 가장 큰 고통이다.

4호차의 문을 열어 모자의 생명을 구해준 권춘석씨(금호역장) 외에도 살아남은 환자들 대부분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지 모르는 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동석씨의 아버지도 매년 어머니와 함께 해 오던 담배농사를 못하게 되고 아내와 아들의 간호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월 18일 사고 후 한달. 동석씨와 어머니는 아직도 병원에 있다.

떠나간 사람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을 알기에 건강한 몸으로 병원을 나가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참사,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짐'으로 남아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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