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3-03-19 09: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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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하늘은 불가사의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있는듯 없는듯 무한은

무성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 나무를 나체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듯 닿을듯 하는 것이

詩일까

언어는 말을 잃고

잠자는 순간

무한은 미소하며 오는데

무성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의 사건으로 떨어져 가고

김춘수 '나목과 詩' 부분

자연이란 모든 나타남과 사라짐을 포괄하는 총체성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진 인간의 운명은 물론 생성 소멸하는 모든 것을 존재자로 머물게 하는 근원적 바탕이 자연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무한은 무화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나무를 나체로 서게 하는 곳에서 오직 존재 이해론자인 인간만이 경건하게 가지 끝에 명멸하는 시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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