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법정(法頂) 스님이 '불가(佛家)의 예절'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법당안 불전에 이미 초가 켜져 있을때는 초를 가져갔더라도 다시 바꾸어 켜지않고 탁자위에 놓아두는 것이 법당 예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남이 먼저 켜놓은 촛불을 꺼버리고 자기가 가져간 초를 켜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지금 새 정부 출범 이후 젊은 개혁성 장관들의 숨찬 개혁적 행보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온 나라의 화두가 돼 있는 젊은 장관들 개혁 이야기에 웬 예절과 법당의 촛불 얘기를 갖다 붙이려드냐 할지 모르나 '특종기사는 쓰레기 통을 뒤져서 써라'고 했다는 문화 장관의 경우에는 느낀바 있어 쓴 소리를 거들고 싶어서다.
이창동 장관은 필자가 평소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친구의 동생이기에 개혁장관으로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진심에서 귀에 쓴 충고 몇마디 쯤은 무관하리라 믿고 드리는 말이다.
군사혁명이나 문화혁명 같은 급진적 개혁의 특징의 하나는 예(禮)가 없다는 것이다.
혁명이나 격렬한 개혁의 과정 속에 예가 생겨날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예 그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혁명의 과정에서 대위가 장군을 쏘고, 젊은 홍위병이 어제의 노스승과 마을 어른을 땅바닥에 꿇어 앉히는 것이 그런 경우다.
지난 것과 오래된 것을 전통이나 유산이란 이름으로 보호하기보다는 늙고 낡고 닳아버린 존재나 가치로 폄하하는 것은 예없고 설익은 개혁이 곧잘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문민·국민의 정부 10년 내내 떠든개혁의 실패를 경험한 국민들로서는 개혁성이 어느 정권때보다 두드러지고 강해 보이는 참여정부의 개혁만은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 설익지 않은 개혁으로 끌고 나가 주기를 희망하고 또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설익은 개혁, 홍위병식 개혁이 안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조직과 그런 사람들이 지켜온 문화도 존중해 주는 인(仁)과 예가 필요하다.
법당에 먼저 켜 놓은 촛불은 모조리 꺼버리고 내 촛불만 바꿔 켜지 않는 것이 참된 불가의 예절이란 지적처럼 남이 켜둔 촛불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오래된 것, 먼저 해둔 것이 다 옳고 값진 것은 아니다.
뜯어 고쳐야 할 낡은 것도 많다.
도무지 시대 감각이 맞지 않는 낡은 가치나 닳아빠진 고물딱지를 신주단지처럼 들고 앉아 '꼴통'부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인정해야한다.
그런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개혁에까지 예가 왜 필요한가 하는 불만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의 더큰 궁극적 목적은 과거의 파괴보다 새롭고 보다 더 완성된 가치를 더불어 창조해 내는데 있다.
따라서 소위 수구들이 끌어안고 있는 낡은 것을 스스로 버리게 만들고 공동선(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젊은 개혁세대다운 지혜와 포용의 여유가 요구된다.
지금의 개혁은 혁명이 아니지 않은가
장관이 넥타이를 풀었다고 해서 넥타이 매고 장관차 문 열어주는 사무관들의 기존 조직 문화는 '조폭문화'라는 영화제목같은 단어 하나로 배척하는 것은 남이 켠 촛불은 끄고 내가 켠 촛불만 밝다는 식의 예의 문제다.
옛날 촛불들은 단숨에 확-불어 꺼버리고 싶겠지만 한박자 참으면 그중에서 굳이 안꺼도 될만한 촛불도 발견할 수 있다.
언론을 맡은 장관이기에 하는 말이지만 내편으로 끌어안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에서 예(禮)는 기초적인 요체다.
기자실 폐쇄와 함께 어느 기자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를 보고토록 하고 모든 뉴스자료(아이템)을 조석간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동시 배포하며 사무실 취재원 접촉금지에다 특종보도를 하고 싶으면 쓰레기통을 뒤져서 하라는 것은 언론부처 장관의 첫 개혁안 치고는 큰 실수고 언론자유에 대한 비례(非禮)요 무지다.
비록 이 장관의 시각에는 문화부 공직자들의 기존조직 문화가 조폭문화처럼 보이고 언론취재 시스템이 미욱하게 보이더라도 남의 촛불을 서둘러 끄려들지 않는 포용(仁)의 개혁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국립국악원이 정악을 연주하면서 집박(執拍)은 배꼽티를 입고 단원들은 홍주의(衣) 대신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채 연주하면 옛 왕조시대 국악의 음악성보다 더 개혁되고 진보된다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처럼 개혁에는 겉모양이나 형식의 파괴보다 내면의 변화가 중요하다.
보수와 반대를 끌어안아가며 밀어붙여도 얼마든지 개혁은 가능하다.
무조건 이것저것 깨고 뜯어고치고 바꾸기만 한다고 진보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부의 '신언론보도지침'을 보면서 영화감독을 버리고 장관이 되자 그의 한창 절정기에 이른 영화연출 재능을 아쉬워하며 '창동이는 아까워'라고 했다는 어느 문화인의 충고를 생각게 된다.
언젠가 꼭 해야할 언론개혁, 그러나 정말 그렇게는 하는게 아니어서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