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오피니언 리더들의 지혜

입력 2003-03-13 12:14:18

"굴욕적이지만 민주당과 함께 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대구 국회의원 모임에서 한 의원이 한 말이다.

같은 당 소속인 조해녕 대구시장이 대구지하철 참사로 궁지에 몰리며 수습 주도권을 정부와 민주당, 시민단체에 뺏긴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고심이 묻어났다.

"여.야.정이 손발을 맞춰야 대구 시민의 아픔을 하루라도 빨리 치유할 수 있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그 의원의 말은 골백번 옳다.

하지만 이의는 있다.

'굴욕적'이란 표현에 대한 이의다.

대구 출신 국회의원이 대구를 위한 일에 여당과 정부에 먼저 손을 내민다고 과연 굴욕일까.

지역의 한 중견 시민운동가는 기자를 만나 "시민단체 간에 의사 소통로가 없는 것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낳는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체계적인 의사결집 구조가 없어 뜻이 잘 모이지 않는 바람에 회의만하다 적절한 대응도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시민사회단체협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 의원과 시민운동가는 입장과 이유가 각기 다르지만 평소 서로 연대하지 못한데 대한 자기 반성을 공통되게 하고 있었다.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대구는 사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이 고질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 지자체, 학계, 언론, 상공계, 시민단체 할 것없이 그런지도 모른다.

모두 지역을 위한다면서 여.야는 관점과 수준이 맞지 않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학계는 견해가 다르다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언론은 다른 매체를 외면해 지역여론이 잘 형성되지 않고, 시민단체는 실무자끼리 친하지 않으면 협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구는 여론주도층이 한 목소리를 내본 적이 거의 없다.

손 발을 맞춰 지역현안을 조화롭게 푼 사례는 더더욱 없다.

각 그룹의 내부 논의 구조조차 없는 마당에 여론주도층 모두가 머리를 맞대 공론을 만드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여론주도층이 제 잘나 제 팔 저혼자 흔드는 동안 대구는 지금의 모습으로 떠내려 왔다.

경제가 망하고 정치가 망했다.

이제 어쩔 것인가.

대구 참사로 우리는 많이 흐느끼고 많이 분노했다.

심적 공황 상태에도 빠졌다.

이 병은 쉬 낫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럴 때 여론 주도층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을 정부로 떠넘기고, 지방분권을 이루고, 지역 대학을 육성하고, 지역 이익을 위해 정권과 연계고리를 가지고, 연구소(DIST)를 만들고, 대기업을 유치하고….

참으로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론주도층이 서로를 인정해 수평적이고 건강한 논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첫 시작이라 믿는다.

바로 지혜이다.

최재왕 정치2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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