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좋은 영화 안보기

입력 2003-03-13 09: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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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을 제작하려면 보통 수십억 원이 들고, 많게는 100억이 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화 제작사나 투자사는 영화 한편 한편의 흥행 성적에 목숨을 건다.

우리나라 영화판에는 재미있는 공식이 있다.

"지방 관객 수가 서울 관객 수보다 많으면 '재미있는 영화', 그 반대면 '재미없는 영화'다"라는 좀 황당하지만 영화판에서는 정석으로 받아들이는 공식이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지방 관객이 서울 관객보다 두 배, 심지어 다섯 배 많은 경우도 있지만, 재미없으면 반대로 지방 관객이 서울 관객의 반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지방 관객이 서울 관객보다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공식은 지방 관객이 좋은 영화를 외면한다는 증거로 더 많이 인용된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를 살펴보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모 영화는 지방 관객이 서울 관객의 다섯 배를 넘었지만,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지방 관객이 서울 관객의 반이었다.

지방 관객의 이런 관람 취향 때문에 권위 있는 해외 영화제에서 중요한 상을 받아도 지방 광고에서는 아예 이를 알리지 않거나, 알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표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세 편이 동시에 상영될 정도로 국제적 인정을 받지만, 늘 다음 영화 제작이 벅차다.

관객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관객이 좋은 영화를 외면하면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영화는 내가 알아서 본다'라는 불퇴전의 취향도 좋지만, 좋은 영화를 재미있게 볼 줄 아는 것도 나름대로 쏠쏠한 맛이 있다.

나우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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