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왜 이래야만 하는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지하철 참사를 바라보면 이와 같은 경악의 물음이 놀란 우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어떤 설명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놀라움은 결코 예고 없이 덮친 이 불행한 사건의 엄청난 규모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불행한 사건이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놀라며, 다른 한편으로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고'로 축소되어 망각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반복 가능성에 더욱 놀라게 된다.
어떤 사건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엄청나면, 우리는 대체로 수많은 사회적 의례와 상징조작을 통해 그 사건을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성금 행사가 그렇고, 희생자들의 영혼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갖가지 추모행사가 그렇다.
그것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의례가 자칫 이 사건을 망각의 늪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는데 있다.
이번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이 사건의 원인을 철저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삭이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우리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불리는 이번 사건이 이해할 수 없기는 커녕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리즘이 우리 사회에 일상화될 정도로 인성이 황폐화되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선 이번 참사를 일으킨 범인의 범행동기는 일상적 테러리즘의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혼자 죽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죽어야겠다'는 범인의 절망의식은 사회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를 수반한다.
사회적 소외계층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킨 직접적 원인이 불투명할 때, 사회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화풀이성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사회적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으로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심리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적 소외의식이 만연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번 사건의 발생 및 수습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는 그 발생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율적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경직된 권위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의 소재를 물을 수 없도록 만드는 집단적 무책임성이다.
대형 인명피해를 초래한 지하철 기관사와 운전사령 간의 교신 내용에 따르면, 기관사는 '차량에 전원공급을 중단한 뒤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습관적으로 '마스터 콘트롤러 키'를 뽑은 뒤 현장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왜 그는 운전사령의 지시에만 매달려 승객의 생명을 구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가 얼마나 획일적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있는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비상식적 행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계획할 터이니 너희들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경직된 권위주의가 결국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행위를 마비시킨 것이다.
우리 사회에 스스로 생각하고 행위 하는 개인은 없고 집단만 있다면, 그것은 분명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의 유산이다.
이번 사건이 대구에서, 그것도 개발을 상징하는 지하철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건의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사건현장을 보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청소까지 한 것이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테이프를 조작한 것이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것 등이 모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집단적 무책임성을 보여준다.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익명의 사회'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성이 바로 일상적 폭력의 뿌리인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기억하는 것만이 수많은 희생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그나마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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