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에 팔짱 낀 정치권

입력 2003-03-10 12:17:08

검찰이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 훼손에 대한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국회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지만 법무부를 상대로 검찰 수사를 독려할 수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위원장의 외유로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구 국회의원들은 "시장과 같은 한나라당이라 곤란하다"며 팔짱을 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 논의가 잠복하는 등 현장훼손 진상 규명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함승희 의원은 10일 "조사 결과 현장훼손 등 초동수사에 문제점이 많아 법무장관에게 따지려해도 법사위원장이 외국 방문 중이라 회의조차 못연다"며 "권한이라도 위임하고 출국했으면 회의를 가질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함 의원은 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상인동 가스폭발 등 대형 사고가 나면 차장검사급이 수사본부장을 맡아 수사한 것이 관례"라며 "특히 중앙로 참사는 사고가 아닌 사건임에도 검찰은 경찰에 수사를 맡기고 뒷짐져 현장훼손 책임을 면키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구지하철 참사 대책위 박상희 위원장은 "(사고보다) 대구지검과 대구경찰청의 업무태만에 따른 현장훼손이 더 큰 문제이나 검찰이 자기 일이라서인지 수사를 외면하고 있다"며 "마냥 법사위 개최만 기다릴 수 없어 13, 14일 대책위를 소집, 당의 대처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함석재 법사위원장은 같은 당 간사인 김용균, 민주당 최용규, 조배숙 의원과 함께 러시아, 헝가리 등지 의회 견학차 지난달 28일 출국, 11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법사위는 주말 또는 다음 주가 돼야 열릴 수 있으며 회의가 개최되더라도 검찰 인사파동으로 인해 대구지하철 참사 문제는 소홀히 다뤄질 공산이 큰 실정이다.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한나라당 대구 의원들은 시민들의 질책이 조해녕 대구시장에게 쏠리고 사퇴론까지 제기되자 "같은 당이라 난처하다"며 국회 진상조사단 구성 요구는커녕 참사 현장훼손과 책임 규명에 대한 언급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한 관계자는 "사고 이후 검찰, 경찰, 대구시, 지하철공사의 대처와 대구출신 국회의원들의 행보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대검이 나서서라도 반드시 현장훼손에 대한 진상과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 국회차원 '진상조사위'도 유야무야

검찰이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 훼손에 대한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국회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지만 법무부를 상대로 검찰 수사를 독려할 수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위원장의 외유로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구 국회의원들은 "시장과 같은 한나라당이라 곤란하다"며 팔짱을 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 논의가 잠복하는 등 현장훼손 진상 규명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민주당=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함승희 의원과 박상희 지하철참사대책위원장 등 4명이 지난 4일 진상조사에서 △검찰 수사 소홀 △현장훼손 책임 규명과 검시방해죄 적용 여부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 노원갑 출신인 함 의원은 검찰이 초동수사부터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을 문제삼고 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에는 서울지검 차장검사가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더구나 이번 대구 참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 대구지검 검사장이나 차장이 수사를 진두지휘해야 했다"라고 함 의원은 말했다. 박상희 대책위원장은 "(참사보다) 대구경찰청과 대구지검의 업무태만에 따른 현장훼손이 더 큰 죄"라며 "인사를 앞두고 있는 검찰이 제 손에 피를 묻히기 싫고 현장 훼손에 검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지검은 특수부가 맡아 현장훼손에 대해 조사하라는 민주당 진상조사단의 요구에 대해 "요구는 요구이고 수사는 수사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검의 지시 이후 뒤늦게 꾸린 수사지휘본부(본부장 임안식 2차장검사)에서 수사를 지휘하고 수사는 검찰 특수부가 아니라 계속 경찰에 맡기겠다는 얘기다. 민주당 측은 검시방해죄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검찰은 "고의성이 입증돼야 한다"며 소극적이라며 질타하고 있다. 박상희 위원장은 "마냥 법사위 개최만 기다릴 수 없어 13, 14일 대책위를 소집, 당의 대처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 법사위와 한나라당 대구 의원=민주당측이 대검 또는 대구지검 특수부가 직접 현장훼손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1주일 전에 제기했으나 국회 법사위는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함석재 위원장 등 여야 의원 4명이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의회 법사위 시찰 명목으로 지난달 28일 출국해 11일에나 귀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간사인 함승희 의원도 당초 방문단에 포함됐으나 "대구 참사와 검찰 인사가 겹쳐 당에서 할일이 많을 것 같아 빠졌다"고 했다. 함 의원은 "대구 현장조사 이후 법사위원 소집통지서를 국회에 제출하려다 위원장이 없어 곤란하다는 국회 직원과 입씨름만 하다 그만뒀다"고 전했다.

법사위에는 대구·경북 출신 의원이 1명도 없다. 이 때문에 위원장 귀국으로 법사위가 열려도 평검사 성명, 검찰총장 퇴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검찰 인사파동이 초점이 돼 대구 참사는 관심 우선 순위에서 밀려날 개연성이 높다. 모두 한나라당인 대구지역구 의원들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성금 모금, 인정사망위 구성, 합동분향소에서 민원접수 처리와 봉사활동 등으로 "할 일은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8일 한나라당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의 활동과 (가칭)한국지하철공사 설립 추진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과 현장 훼손 책임 규명에 대해 언급하는 의원은 없다. 한 의원은 "국회 진상조사단이 구성돼야 하나 대구의 아픔을 자꾸 찌르는 격이어서 우리가 먼저 구성하자는 말을 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또다른 의원은 "정부 책임은 온데간데 없고 대구시 책임이 집중 거론돼 시장과 같은 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래 저래 현장훼손 진상규명에 대한 정치권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셈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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