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민족 작가회에서 지하철 참사 추모문학제를 가졌다.
왜 이 거리를 떠나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오늘도 중앙역을 기웃거리고 있을 영혼들을 한 줄의 시로 불러보았다.
내 아들아 딸들아! 촛불처럼 가뭇없이 흔들리는 목소리는 출입구를 찾아 호흡이 길어지고, 계단을 오르는 그대 발목은 자꾸만 무릎이 접질린다.
읽다 만 한 편의 시가 불길에 타오르듯 마침내 오열을 토하고, 몸을 태우는 글자 속에서 하얀 슬픔이 국화꽃 한 송이 송이로 태어나고 있었다.
이 땅에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발 딛고 살아가는 초라한 나여! 가파른 이 세상을 위해 곡비(哭婢)도 될 수 없어 한없이 부끄러운 밤이었다.
나는 밤새 쌀을 씻는다.
뿌연 쌀뜨물처럼 슬픔은 잘 헹궈지지 않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그대들을 위해 밥을 안치고 불을 지핀다.
그대들 앞앞이 더운 김이 나는 흰쌀밥 한 그릇과 수저처럼 가지런히 국화꽃이 놓인 밥상을 차린다.
나는 겨우 이것으로밖에 슬픔을 대신할 수 없었다.
어둠이 내리면 촛불도 조명이 되는 이 거리, 여전히 연인들은 꽃을 사고 사랑을 나누고 커피를 마신다.
영화관에서는 조심스레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고 연인들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영사기는 돌아가고 연인들은 어제를 잊고 내일의 달콤한 꿈을 꾼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억이 또렷한 슬픔을 꺼내본다.
오래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내가 죄가 많아서 너그 아버지 일찍 죽었데이"라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셨다.
그리고는 긴 세월을 스스로 감옥에 가두시고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겨진 우리 가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허둥거리고 있다.
진정 슬픔이 살아 남은 자의 몫이라면, 이제 우리 조금씩 늦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둥근 밥상 머리에 빈 그릇 들고 다 같이 둘러앉아 숟가락질부터 다시 배우면 안될까? 나약해진 팔 다리로 서로의 어깨 빌려주며 다시 걸음마부터 시작하면 안될까? 국화꽃과 촛불의 의미를 오래 되새기면서 우리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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