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33)양준혁과 이승엽

입력 2003-03-07 12:05:05

제주 출신의 오봉옥이 92년 시즌 38경기에 등판, 13승무패로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승률 100%를 달성, 1987년 김시진(최다승투수) 이후 5년만에 투수부문 타이틀을 움켜쥐는 감격을 누렸다.

팀은 부진했지만 우수한 선수들의 활약은 계속됐다.

나중에 '괴물 타자'로 불리게 되는 양준혁은 93년 입단하자마자 타율 3할4푼1리, 출루율 4할3푼6리, 장타율 5할9푼8리를 기록, 팀 최초의 신인왕으로 뽑혔다.

95년에는 이동수가 뜻밖의 감격을 안겼다.

꿈나무 육성책의 일환으로 1992년 입단한 이동수가 삼성 사상 2번째로 신인왕을 거머쥔 때문이다.

꿈나무 육성은 1989년부터 실시, 1991년 결실을 보아 슬러거 신동주를 시작으로 외야수 최익성, 투수 박석진 등을 탄생시켰다.

양준혁 선풍은 94년에도 이어져 타점왕에 올랐고 1996년에는 타율 3할4푼6리로 수위타자를 비롯해 최다안타(151)와 장타율(6할2푼4리) 1위를 차지해 개인 최초로 골든 글러브(외야수)를 수상했다.

특히 양준혁은 1996년 8월 15일 팀 사상 최초로 20(홈런)-20(도루) 기록을 달성한 뒤 8월23일 현대와의 대구경기에서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 무르익은 타격 솜씨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출현으로 위세가 한 풀 꺾여 1997년에는 글든 글러브 수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98년 양준혁은 수위타자(3할4푼2리)와 최다안타(156)및 출루율(4할5푼) 1위를 거머쥐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후 양준혁은 해태의 특급 마무리 임창용과 트레이드 된 뒤 LG를 거쳐 지난해 FA 신분으로 친청팀 삼성에 복귀했다.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타자 이승엽은 입단 3년째를 맞은 97년 시즌 초부터 선풍을 일으키며 홈런과 타점 및 최다 안타상을 휩쓸어 팀 사상 4번째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이승엽은 98년 장타율과 출루율에서 1위를 차지한 뒤 99년 국내 타자로는 최초로 전인미답의 홈런 54개를 날려 그가 빚어 내는 신화의 본격적인 줄거리를 펼쳐나갔다.

이 해에 이승엽은 타점과 장타율 및 출루율까지 석권, 또 한번 최우수선수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으며 2001년 홈런 39개를 날려 홈런왕에 올라 타격왕 양준혁, 타점왕 타이론 우즈를 물리치고 개인 통산 3번째로 최우수선수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 역시 홈런왕 등 최고의 성적을 펼쳐 자신에게 익숙해진 최우수 선수상을 받게 됐다.

이승엽은 95년 7월23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OB와의 경기에서 3회 초 박철순의 초구를 강타, 우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을 터트린 뒤 "기분이 묘했다. 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다. 박철순 선배는 어릴 때 나의 우상이었는데 내가 홈런을 터트리다니 정말 죄송스러울 뿐이다"는 소감을 말했다.

대 투수를 꿈꾸며 입단했던 이승엽은 중학시절부터 신통치 않았던 왼쪽 팔꿈치에서 뼈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타자로 전향했다.

타자로 전향한 이승엽은 여전히 기대주였지만 초대형 타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우용득 감독은 "힘을 바탕으로 정교한 타격을 구사하는 장거리 타자로 이만수와 김성래의 뒤를 이을 것 같다."고 이승엽을 평했다.

우 감독에 의해 발굴된 이승엽은 백인천 감독의 조련으로 홈런 타자로 변신, 그 이전의 스타들보다 더 빛나는 위대한 발걸음을 이어오고 있다.

김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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