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삼성에는 새로운 젊은 피들이 잇따라 수혈됐다.
류중일과 환상의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강기웅을 필두로 김상엽, 이태일, 류명선, 정윤수, 이상훈, 이상목 등이 마운드에 공급됐고 유격수 정경훈, 외야수 신동주, 강종필 등과 롯데에서 온 투수 이문한, 1루수 김용철, 포수 김성현 등이 포진하게 됐다.
강기웅은 장효조 못지 않은 '천재형 타자' 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고수 머리를 한 그는 야무지고 영리한 인상을 풍겼고 머리도 비상한 선수였다.
펀치력도 소유한 그는 빠르면서도 부드러운 스윙으로 3할대의 날카로운 타격을 선보였다.
2루수로서 유격수 유중일과 함께 하는 키스톤 콤비는 국내 최강의 수비망을 구축했다.
프로선수로서 몸 관리도 잘하고 현역 내내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그는 잔 걱정도 많았다.
당시 그의 한 팀 동료는 "강기웅이 뛰어난 선수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플레이에 충실하기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야구 열심히 하면 무엇 하나, 나중에 뭘해야 잘살 수 있을까 하는 따위의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강기웅은 은퇴한 뒤 후광을 크게 발하지 못했다.
그 정도의 명성을 지닌 선수가 은퇴 후 급속히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도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그는 현재 대구시내 모 병원의 사무장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엽은 90년대 삼성 마운드의 대표적 투수였다.
80년대 재일동포 김성길을 중심으로 마운드를 꾸려가던 삼성은 대구고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뛰어든 김상엽을 새 얼굴로 내놓았다.
그는 140㎞대 후반의 강속구와 파워커브로 삼성 마운드를 대표했다.
그러나 그는 한 해에 15승 이상을 거두면 다음해에는 10승 이하로 떨어지는 기복을 보였다.
허리 부상 등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가 투수들이 혹사당하는 한국 현실에서 자기 몸을 지켜 선수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 하는 분석도 있었다.
그는 결국 LG로 팀을 옮긴 뒤 조용히 선수 생활을 접었다.
90년 데뷔한 해에 롯데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이태일과 재기발랄한 류명선 역시 마운드에서 한 몫을 했으나 타자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성장 가능성을 평가받았던 이상훈은 삼성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두산으로 트레이드돼 뒤늦게 마운드에서 한 몫하고 있고 이상목도 한화로 옮겨 꽃을 피웠다.
롯데에서 옮겨온 투수 이문한은 삼성에서 활약하다 은퇴 후 삼성 구단 프런트로 변신, 스카우트를 거쳐 현재 운영팀 차장으로 일하고 있고 김용철은 삼성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다 삼성 코치를 거쳐 현재 롯데 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호타준족의 신동주는 삼성에서 뛰다 기아로 옮겨 여전히 강타자로 활약중이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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