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객 발길 줄고 영정만 쓸쓸히

입력 2003-03-05 13:38:19

대구 지하철 참사도 어느듯 발생 15일을 넘겼다.

그 처참함이 그대로 집약된 곳은 대구시민회관 소강당. 사망자 합동분향실, 실종자가족실, 수습대책본부, 프레스센터가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시간은 무서운 것. 4일 오후 찾아가 본 시민회관은 10여일 전과는 많이 달랐다.

그 엄청난 절망과 분노, 통곡, 그리고 부산함까지 어느듯 풀이 죽은 듯했다.

1층 실종자가족 대기실. 입구 벽엔 연락 끊긴 가족들을 기다리는 애타는 사연들이 사진과 함께 빽빽이 붙어 있었다.

"자식을 두고 어떻게 집에 돌아가겠습니까? 애가 없어졌는데도 손 쓸 방법이 없다 생각하니 더 절망스럽습니다". 딸을 잃었다는 김모(47)씨의 얼굴은 매우 초췌해져 있었다.

벽을 마주해 기도하는 가족도 있고 신문을 뒤적이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지친 것 같았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기력도 없어 보였다.

한 의료인은 "정신적 충격이 큰데다 잠조차 제대로 못 자 대부분 쇠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기실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생겨 있었다.

중앙로역으로 많이 옮겨 갔다고 했다.

플래시를 터뜨리던 카메라, 한마디 얘기라도 더 주워 모으려 애쓰던 기자들도 가고 없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실종자가족 대책위 사무실만 다소 분주해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전화를 하거나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두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 옆의 대구시 수습대책본부 사무실에서는 한 공무원이 어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는 몇년 전에 집 나간 아들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이 업무를 맡은 임정기 시 공원과장은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매일 서너명씩 실종신고를 하러 온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큰 홍수는 지나간 듯 했고, 중앙지원반에 주업무까지 넘겨준 탓인지 수습대책본부는 맥이 빠진듯 느껴졌다.

시민회관 2층은 분향소. 피워 올린 향 냄새가 진했다.

33명의 영정이 모셔진 앞에서 조문객 5명이 헌화하고 있었다.

딸을 잃었다는 한 어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넋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조문객은 2천여명으로 줄었다고 했다.

장례가 진행됨에 따라 통곡하는 유족들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분향소 안내를 맡은 오광수(46)씨는 "다 큰 딸을 잃고 영정을 어루만지며 서럽게 울던 어떤 어머니까지 자리를 떴다"고 했다.

검은 양복 흰 장갑 차림의 정치인들까지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영정 주위로 둘러진 화환도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내외신 기자들로 발디딜 틈 없던 3층 프레스센터도 거의 비어 있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빠져 나가 몇몇 기자들만 남아 서성거릴 뿐이었다.

4층은 '금융지원센터'. 금융감독원·신용보증기금·신용보증재단·농협·대구은행 파견 직원들이 피해 점포 등을 대상으로 활동하나 최용문 시 기업지원담당은 "영업 손실 피해 지역이 확정되지 않아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근래에 또하나 생긴 공간은 대강당의 유류품 전시실이었다.

현장이나 안심기지창 등에서 수습된 중앙로역 유류품 230점이 전시되고 있는 곳. 질녀를 잃었다는 전진도(대구 본리동)씨가 "혹시 단서될 만한 게 있을까 싶어 들렀다"며 진열장 속을 살피고 있었다.

변하지 않고 시민회관을 지키는 것은 건물 꼭대기의 조기였다.

그리고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플래카드들이 비어져 가는 시민회관을 에워싸고 있었다.

깃발, 그리고 영세불망(永世不忘).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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