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 그 후②> 재난 대응력 키우자

입력 2003-03-05 11:46:52

지난달 18일 오전 9시53분쯤 중앙로역에 정차해 있던 안심행 1079호 전동차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났다. 하지만 기관사는 당황한 나머지 사령실에 보고하지 못했다. 역무실의 직원들은 모니터 감시를 소홀히 해 불이 난 것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종합사령실은 '화재발생'이라는 경고가 모니터에 뜨고 경보음이 울려도 오작동으로 간주해 버렸다.

사령실은 불이 난 줄 알면서도 다른 전동차를 대피시킬 엄두를 못냈다.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화재가 났으니 주의하라"는 통보가 있은 뒤에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

승객들은 문을 열 비상코크가 있는 줄도 몰랐다. 유독가스가 흘러드는데도 그냥 앉아 있기만 했다. 엎드려서라도 연기를 피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하철 화재신고가 잇따라 들어오는데도 119 상황실은 승객들에게 대피를 안내하지 못했다. 해 준 말이라고는 그저 "출동했다" "기다려라"가 전부였다.

하지만 출동한 구조대는 지하철 비상상황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유독가스 배출구가 돼 버린 역 출입구에만 몰려 있느라 구조에 시간을 놓쳤다. 대구역이나 반월당역 출입구를 통해 터널로 진입하면 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공기호흡기 등 소방 장비도 군 부대에 빌려 사용할 정도로 부족했다.

경찰은 화재가 발생한 지 40여분이나 지나서야 일대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앰뷸런스들은 길이 막혔지만, 그럴 때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부상자에게 특히 필요한 산소호흡기는 차 안에 없었다.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병원들은 도착하는 환자를 붙잡고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부상자 중 여러 명이 병원에 도착하고도 목숨을 잃었다.

이래서 이번 참사는 인재(人災)로 규정됐다.

전문가들은 대재앙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영남대 행정학과 우동기 교수는 대구가 하루 빨리 통합방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독촉했다.

우 교수에 따르면 119 상황실로 재난이 신고되면 동시에 대구시.경찰.병원.한전.도시가스회사 등으로 상황이 전파돼야 한다. 재난 지역의 상수도.전력.응급의료 등 도시 인프라 현황이 즉각 도면으로 표시되는 상황실도 갖춰져야 한다.

재난관리법에 따라 상황반, 수습대책반, 행정지원반, 부상자반, 구조구난반, 교통대책반이 즉각 편성돼야 한다. 경찰은 즉각 일대 교통 통제에 들어 가 응급차나 소방차가 통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방본부는 현장 구조도를 즉시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가장 효율적인 대응법을 즉각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병원들은 같은 시간대에 비상상태에 돌입해 곧바로 응급차량과 응급 의료진을 현장에 파견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들이 이미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 서울도 1995년부터 650여억원을 들여 남산 지하벙커에 종합방재시스템을 구축했다. 서울은 이로써 119 상황실, 재난재해 상황실, 민방위 경보통제소, 국가안전관리시스템 등을 통합했다. 거기서 모든 도시형 위기는 물론 자연재해까지 통합 관리토록 했다.

우 교수는 "안전 선진국 대도시에서 이번 방화가 발생했더라면 인명 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한 전문가는 "대형 재난에는 대구시만으로는 수습능력에 한계가 있다"며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만들어진 행정자치부 재난관리과와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큰 불이 나지 않도록 불에 타지 않는 자재를 사용하는 등의 예방책 강구를 특별히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과 최영상 교수는 지하철만큼 다중 집합적인 시설도 없고 그만큼 테러나 재앙에 취약한 것도 없는 만큼 지하철은 특별히 관리돼야 한다고 했다.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령실과 기관사가 유기적으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소방설비를 강화하고 소방 기술자를 확보하는 한편, 참사를 모델화 해 직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의 개인 방재능력 향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시민들은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도 정작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최소한 기본적인 대피요령 정도는 알아놔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보호원 김종관 생활안전팀장은 "이번 지하철 참사에서도 지하철 관련 기관들이 평소 이용자 안전교육을 제대로 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생활안전팀이 지난해 초교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방서나 교통안전시설 등 현장방문을 통해 체험 학습을 한 비율은 5.9%에 불과했다. 대부분 안전 교육 시간은 비디오 시청이나 교사의 설명, 학교장 훈화 등으로 채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에서는 소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실습 중심의 안전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일부 안전 선진국은 성장기는 물론 심지어 노인이 돼서까지도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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