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시스템이 대형재난 부른다

입력 2003-03-03 13:27:14

사람의 두뇌와 손발을 대신하는 첨단 자동화 시스템이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충격이나 오작동 때 오히려 대형 재난을 유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일손을 덜고 편리성을 높이는 반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부닥치거나 시스템에 결함이 생길 경우 즉각적인 대응체제 구축이 불가능,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 1월 대구 소방헬기 추락사고는 전자동 시스템 장비를 도입해 시험 운영하던 과정에서 일어났고, 잇따르는 승용차 자동변속기 급발진 사고도 자동화 기기의 예측 못할 오작동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에서는 자동화 시스템의 한계가 곳곳에서 더 첨예하게 드러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대구지하철공사 노조 관계자는 "지하철 운행 시스템에서 기관사가 하는 일은 출입문을 닫는 것 뿐"이라며 "기관사는 운행과 관련해 사령실의 지시에 따르는 것 외에 별 권한이 없어 화재 등 긴급상황을 뻔히 보고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동 운행에 익숙해져 있는 기관사가 이번처럼 돌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확한 상황 판단을 못해 종합사령팀의 구체적인 지시없이 무정차 운행(Skip Stop)이나 재출발 조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서울지하철공사 안전관리실 관계자는 "이번 참사는 자동화의 맹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전력 시스템에 대해서도 경북대 전기·전자공학부 백영식 교수는 "화재가 나면 모터 등이 타면서 과전류가 발생해 전기가 자동으로 끊어지도록 돼 있고 급전도 이뤄질 수 없어 전동차 운행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또 "기관사와 사령실이 자동단전 시스템을 사전에 숙지하지 못해 피해가 커진 것 같다"며 "이 시스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동 화재탐지 시스템도 단순한 오염 물질에까지 민감히 반응, 화재가 아니더라도 툭하면 울려대 정작 실제 상황에서는 경보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평소 오작동이 많아 사령실 관계자들이 화재경보 자체를 대수롭잖게 여기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OSC엔지니어링 방재시험연구소 이판열 소장은 "방재시설을 중심으로 오작동이 많아 디지털 장비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수동과 자동을 겸비한 '오버랩 시스템'을 갖춰야만 안전도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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