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는? 그 경계선상의 시간은?
삶의 이쪽과 죽음의 저쪽이 나뉘어지는 시간은 찰나(刹那)이다.
도심 외곽지에 살고 있는 나는 매주 화요일 시내에 위치한 반월당에 간다.
차를 가지고 직접 시내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안심역이나 각산역에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날도 각산역까지 승용차로 와서 세워 두고 지하철역내로 내려갔다.
승차권 판매대에서 승차권을 뽑아들 때 전동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을 타야지 하는 마음에 급하게 개찰구를 빠져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정차해 있던 객차의 문이 스르르 닫히면서 전동차는 내 눈앞에서 출발해 버렸다.
4분 뒤면 다음 객차가 들어 올 텐데, '한 걸음만 빨리 올걸,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도' 하는 생각에 괜히 아쉽고 억울한 마음이 일어났다.
다음 객차가 들어오는 그 4분 동안 그 마음은 영 가시지 않았다.
다음 객차가 들어오고, 자리에 앉는 순간 먼저 놓친 객차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졌다.
전동차는 순조롭게 출발했고, 다음 역인 반야월역을 거쳐 신기역, 용계역…. 그리고 아양교역을 출발했다.
30, 40초 달렸을까, 갑자기 덜컹하고 다음 역에 닿기 전에 멈추었다.
그렇게 한 1분쯤 지나 다시 출발해 큰고개역에 닿았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객차의 문은 닫히지 않았으며 조금뒤 잠시 정차중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때의 시간이 10시를 조금 넘었을 것이다.
그 뒤에도 잠시 기다리라는 몇번의 안내 방송이 있었고, 곧 출발한다는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뒤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안전 사고로 출발이 잠시 늦어지겠습니다.
바쁘신 분은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정확히 10시19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안전 사고라니, 출발이 조금 늦어지겠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시간 벌써 중앙역에선 그 참사가 진행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예정대로라면 이 전동차는 10시 4, 5분에 반월당 역에 도착했어야 했다.
나는 부랴부랴 객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까지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고는 '참사'로 보도되고, 대구 시민은 물론 온 나라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는 뉴스가 속속 보도되었다.
그 순간의 멍-함이라니.
그 날 각산역에서 나 바로 뒤에 개찰구를 빠져 나와 껑충껑충 내 앞을 지나쳐간 그 청년은? 내가 다다랐을 때, 스르르 빠져나가던 전동차의 차창에 얼비치며 떠나가던 그 얼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찰나의 순간, 나는 삶의 이쪽 끄트머리에 쿵 하고 엉덩방아 찧으며 다시 주저앉게 되었다.
나처럼, 또 다수의 사람들도 그러 하였으리라.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이들은 그 찰나 죽음의 저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어린 삼남매를 두고 생활전선으로 향하던 젊은 엄마, 곱게 키워온 딸의 졸업식장에 가던 어머니와 어린 조카, 훌륭한 음악가를 꿈꾸며 방학중임에도 학원으로 가던 예쁜 딸….
그 많은 희생자들 중 기막히지 않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어쩌면 나처럼 다리가 짧아 그 찰나의 순간사고 차를 놓치고 바로 뒤에 들어온 문제의 차를 탔을 수도, 아니면 지나 가는 이와 어깨를 부딪혀 한 순간 멈칫거림으로 차를 놓치는 바람에 운명의 그 차를 탔을 수도 있다.
그 날 그 창가에 얼비치며 떠나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처참하게 드러난 사고 현장의 그 매캐한 냄새를 잊을 수 없다.
같은 시간 같은 도시에서 같이 숨 쉬고 있다가 나와는 달리 영원히 저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들,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나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
옛 선인들은 이 생의 것들은 모두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범인인 나로서는 살아 숨 쉬는 일초 일분이 영원(永遠)이다.
그 영원에 있는 지금이 눈물겨울 뿐이다.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와 먼저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은령(시인·대구민족작가회의 총무)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