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내 어릴 적 고향바다에서는 싱그러운 물미역 냄새가 난다.
학교를 마치고 바다로 돌아가는 아이들, 두 손에는 바짓가랑이가 잡혀진 채 엉거주춤 바다로 들어간다.
가까운 바위까지 건너간 우리는 돌에 붙은 미역귀를 뜯어 설렁설렁 바닷물에 헹군다.
도회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우리는 짭짤한 바닷물에 생미역을 찍어 먹었다.
자갈밭에 누워 바라본 봄 햇살의 바다.
아기의 옹알이 같기도 하고, 그리운 친구의 눈망울처럼 반짝거리던 그 바다.
어린 내 눈에 가득 차오르는 환희, 나도 모르게 일순간 황홀경에 빠져들곤 했다.
내 꿈의 시원이며 상상의 전부였던 그 바다.
지금도 고요히 눈을 감고 기다리면 소리없이 밀려온 파도에 발목이 젖고 내 입술이 젖는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 났을 때, 혹은 엄마의 회초리가 두려워질 때,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하게 되었을 때도 바다는 나의 일기장처럼 늘 곁에 있어 주었다.
바다를 떠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로 떠밀려온 내게 바다는 언제나 위안이었고 희망이었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이다.
우울한 나뭇가지에도 어느새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애기손톱만큼 파르스름하게 부푼 매화 꽃망울이 금방 향기를 터뜨릴 기세이다.
봄이 온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희망을 가져도 좋으리라. 저마다의 가슴에 접힌 울음과 슬픔도 봄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리라.
살아가는 일이 힘들수록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나는 오늘도 회색도시의 하늘을 보며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생미역내와 퍼덕이는 파도소리가 담긴 바닷가 편지를 그대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대여! 두 눈을 감아 보라, 그대의 귓가로 순하고 순한 파도소리가 크고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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