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인정사망 기준 마련

입력 2003-02-28 13:37:28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유해 현장 훼손이 문제돼 사체를 찾기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되는 데다 유해가 없는 실종자의 사망 인정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

"눈을 감으면 '아버지' 하며 달려 와 어린애처럼 품에 안겨요. 정희는 3남매의 맏이로 집안의 꽃이었지요". 큰딸 정희(22·가명)씨를 찾아 헤맸던 아버지 정태석(52·경북·가명)씨는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 지친 몸을 뉘어 보지만 자꾸만 딸이 "아버지" 하며 달려올 것 같아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하던 딸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정희씨는 경산에서 자취를 하며 교사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일주일에 두번씩 대구 중앙로 학원에 다녔었다.

사고가 발생한 그 날도 학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하지만 정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누나의 참사 소식도 모른채 갓 입대한 군부대에서 흙먼지를 마셔가며 차가운 날씨와 싸우고 있을 아들 정호(20·가명)씨 생각이다.

"누나 사고 소식을 들으면 엉뚱한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아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시신도 유해도 유류품도 없어 실종자 확인조차 못받고 있으니 알리기도 뭣하지요". 그래서 가족들은 아들이 알까 봐 가슴으로만 운다고 했다.

아들은 지난 4일 입대해 경기도에서 신병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허탈해 하던 아버지는 "딸을 만나러 간다"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대학원 졸업식 때 입으라고 큰딸이 사 줬다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들은 방화범 등이 1차 사법처리된 뒤 수사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며 27일부터는 답답한 심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수사 대상에 화재설비·전기 등 전문 분야가 워낙 많아 배워가면서 해야 하다보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고, 과실로 볼 수 있지만 법적 처벌대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 많다"고 했다.

수사본부는 지금처럼 수사에 진전이 없을 경우 수사 진행 상황 브리핑도 매일 갖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했다.

○...실종자 인정사망 처리 기준이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경찰도 실종자 변사처리 문제로 바빠졌다.

경찰은 실종자 100여명의 경우 유해조차 찾기 어려워 변사 처리 또한 난관에 부딪히자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때의 처리 방식을 모델로 삼기로 했다.

수사본부 한 관계자는 "삼풍 때도 상당수 시신을 못찾았던 전례가 있어 요즘은 '삼풍참사백서'를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풍 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 결과가 통보되기 전이라도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실종자 심사위원회 심사를 받아 사망을 인정한 바 있으며,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음이 증명되거나 △유류품이 발견된다든지 △목격자가 있을 경우 △그 외 여건으로 봐 사망으로 추정할 수 있는 정황이 있는 경우 중 한 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잠정적으로 사망을 인정했다는 것.

수사본부 조두원 부본부장은 "통신자료, 목격자, 학원·직장 출근 상황 등을 확인해 시신을 찾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사망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사본부에는 사건 초기 100명 이상의 기자들이 몰렸으나 28일엔 30여명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1차 사법처리 후 큰 기사거리가 눈에 띄지 않자 서울지역 언론사 및 외신 기자들이 상당수 철수한 것.

매일 아침 수사본부를 지키던 일본 교도통신 기자는 "27일을 마지막으로 수사본부에서 철수해 귀국한다"며 "일본에도 이같은 지하철 참사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지하철공사를 찾는 보도진들은 부서끼리 서로 책임을 미루는 직원들 때문에 오락가락해야 할 판. 담당 부서에 가면 "홍보팀을 거쳐 문의하라"고 하고 홍보팀은 "해당 부서에 직접 문의해 달라"고 하기 때문.

한 홍보 직원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보니 각 부서 근무자들이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기자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요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 실정"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U대회 성공 기원을 위해 계획했던 달구벌대종 타종 행사를 다음달 한달 동안 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고의 조기 수습을 바라는 애도 타종으로 바꿔 진행키로 했다.

이에따라 3월1일부터 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낮 12시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종각에서 달구벌대종을 12번 울린다는 것. 타종 후에는 묵념곡도 방송할 예정이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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