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슬픈대구

입력 2003-02-28 13:39:59

지금, 대구는 어둡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렇고 도시전체가 분노와 슬픔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다.

부인에게 꽃 한 송이 사들고 가기를 쑥스러워 하던 50대 남자들도 국화꽃을 들고 중앙로역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고, 남을 위해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던 10대들도 사고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촛불을 켜고 있다.

중앙로역 안팎에 쓰여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은 안타깝다 못해 고통이며,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은 대구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더구나 속속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슬픔보다는 오히려 분노로 도시전체를 더욱 아프게 하고있다.

지역민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매일신문은 지난 주말부터 '우리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는 제목으로 추모글을 모아 매일 한 면씩 제작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비통한 사연들을 정리하는 담당데스크로서 추모글을 읽고 제작해야하는 아침시간은 차라리 고통이다.

이번 사고로 엄마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된 영천 3남매의 일기를 정리하는 그날 아침, 맏딸 수미양의 '우리엄마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읽으며 기어이 울고 말았다.

호강한번 못시키고 떠나보내야 했다며 비통해 하는 남편, 정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아내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남편의 사연, 제자를 떠나 보낸 선생님의 안타까움, 동생을 그리워하는 언니의 애절함, 떠나간 친구에게 잘해주지 못함을 후회하는 글, 쏟아지는 추모의 글과 시들…. 애통함과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있는 추모판을 제작하노라면 대구의 슬픔은 대구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추모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9·11테러 당시, 슬픔속에서 미국인들이 보여준 변화였다.

그들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코 가치관의 변화다.

가족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교회출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또 50%가량의 이혼율과 더불어 급속하게 진행되던 가정붕괴 현상에 제동이 걸렸다.

나와 가족, 내 주변을 사랑해야한다는 의식의 변화가 사회를 휩쓸었다.

물질보다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미국인들은 헌혈을 평상시보다 3배나 많이 했고 자원봉사 센터의 방문자는 50%나 증가했다.

테러가 미국인들에게 공통의 목표를 주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특히 뉴욕인들은 이미 전개 하고있던 '뉴욕사랑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갔다.

문화관계자들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뉴욕을 많이 찾도록 뉴욕문화명소의 입장료를 할인하는가 하면, 뉴욕 시민들은 'I love New York' 운동을 활발히 벌이면서 한마음이 됐다.

9·11테러가 미국사람에게 공동체의식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대구의 지하철 사고는 우리에게 무슨 계기가 될 것인가? 추모의 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것 같다.

글 속에는 한결 같이 '살아남은 자의 몫'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지금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한다는 내용이다.

또 안달복달 산다며 외면하고 있던 '헌신'과 '사랑' '이해' '용서'같은 단어를 하나 하나 씩 꺼내 그 의미를 꽃피우면서 사랑이 있는 삶을 꾸려보자는 제안도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대구사람임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간혹 대구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하철 사고로 슬픔이 가득할 대구를 생각하면 몸은 떠나있지만 가슴은 미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지금 대구는 대구를 떠나있는 사람이나 살고있는 사람 모두 하나가 돼 있다.

경제가 침체된 대구. 사건이 났다하면 수 백명이 사망하는 대구. 남이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대구. 배타적인 대구. 마음을 모으기 어려운 대구. 그 대구가 지금 슬픔으로 하나가 돼있다 . 하나가 된 대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끌어갈지는 남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슬픈 대구는 지금 새로운 시작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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