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3-02-28 13:39:59

신이 세계를 처음 만들 때는

아무데도 길을 내지 않았다

그래야 너희들이 스스로 내리라

이 그럴듯한 덫에 걸려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길을 내는 바람에

세계는 길 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가면 게가 어딘가

모두 가기만 할 뿐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는 길

그게 길인지 아닌지 몰라서

사람들은 또 새로 길을 낸다

언제나 실종의 확인으로만 그치는 노역이

세계를 온통 상처내고 있는 길

- 이형기 '길' 일부

히말라야 자락에 인도의 '라다크'가 있다.

천년 넘게 검소한 생활과 협동으로 공동체를 이뤄온 평화스런 마을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곳에 개발의 바람이 분 것이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탐욕스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개발 프로젝트는 쓰고 있다.

발전과 진보의 길이란 결국 서구사회처럼 사회적 생태적 재앙을 초래하는 길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드는 발전의 길이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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