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라이프-영해 애향동지회

입력 2003-02-28 09:24:19

영해 3·1만세운동은 일제 강점 당시 동해안에서 일어난 의거중 가장 큰 규모였다.

1919년 3월18일 영해 장날을 맞아 일어난 만세운동은 군내 전 지역으로 확산돼 시위 참가자가 2천여명에 달했으며 일제의 무자비한 발포로 현장에서 8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준 항일 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항쟁으로 꼽힌다.

만세운동 후 600여명이 검거돼 170명이 재판에 회부된 기록만 보아도 영해 3·1만세운동이 얼마나 가열차게 전개되었는지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실형을 선고받은 선열 가운데 68명이 일경의 심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옥사한 영해 만세운동은 지난 83년 영해면 성내리 산49에 각계각층의 지원금과 성금 등으로 3·18의거탑이 건립됨으로써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

영해 애향동지회는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몸을 던진 향토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그날의 함성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을 19년째 계속 해오고 있다.

올해는 경북도 단위 행사로 격상돼 영해 3·1 만세 대행진 재현 행사와 3·1절 전야제를 주관하느라 회원 모두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다.

영해 애향동지회는 지난 1985년 3월 결성됐다.

당시 영해, 병곡 등 북부 4개면 지역에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고태수, 박정섭, 박용득, 조장환, 김창섭, 송종인, 이상욱 씨 등 11명이 발기인이 되어 3·1절 행사를 마친뒤 만세운동이 일어난 고장의 긍지를 되살려야 한다는데 뜻을 모아 가칭 애향 동지회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초대회장은 박정섭(전 경북도의원)씨가 뽑혔다.

발기인들중 일부는 그후 군의원과 도의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송종인 회원은 현재 영덕군의회 부의장을 맡는 등 아직 지역사회의 여론 주도층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애향동지회 회원들은 이후 86년부터 3·1절이 되면 3·1의거탑을 참배하고 만세운동이 일어난 3월 18일에는 희생선열 합동 추념식을 거행해왔으며 희생자 유족들에게 백미를 전달하는 등 유족돕기 운동도 벌였다.

회원들의 이같은 노력 덕분으로 영해 3·18만세운동에 대한 일반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점차 높아지고 영덕군을 비롯한 군내 기관단체들의 지원도 잇따르면서 90년 3월 18일 있은 합동 추념식에는 기관단체장과 유족, 학생, 주민 등 1천200여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영해 만세운동은 94년 3·1절때부터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된다.

애향동지회원과 학생, 주민들이 참여해 당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영해면 성내리 로터리 부근에서 일본경찰과 군인에 대항한 만세운동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행사를 벌였기 때문.

회원들은 행사준비를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주도한 충남 아우내 장터의 3·1만세운동 현장을 전 회원이 방문해 참관한 뒤 당시 일경의 복장과 총칼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장꾼 복장을 한 상인과 소달구지 등을 동원, 만세운동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때부터 영해 3·1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타지역에서까지 주목을 받게되었으며 서울, 대구, 포항, 울산 등 전국에 있는 영덕군 향우회 소속 출향인사들도 버스를 전세내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군민들의 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는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금년초 제16대 회장에 취임한 박진현(44) 영해 애향동지회 회장은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데 대해 긍지를 갖고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확고한 주인의식과 애향심을 키우는데 동지회가 앞장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 애향동지회를 지키고 있는 현재 회원은 57명.

가입자격은 25세에서 45세로 영덕군 북부 4개면에 거주하는 남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45세가 넘으면 특우회원이 된다.

애향 동지회의 운영예산은 회원들이 내는 연간 20만원 가량의 회비가 전부.

영해 3·1문화제로 명명돼 진행되는 행사는 신돌석 장군 의병 출정식이 포함된 전야제에 이어 3·1절 당일 만세운동 재현과 3·1의거탑까지 대행진이 하이라이트며 동지회 예산과 군비와 국비지원이 합쳐 치러진다.

올해는 도지사와 도단위 기관장이 참석하는 도단위 행사가 되면서 도비도 내려와 회원들은 한달전부터 행사준비에 매달려 왔다고 한다.

회원으로 활동한지 10년째인 장성우(38)사무국장은 "행사준비는 힘들지만 행사를 할 때마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다보니 애국지사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며 "2천~3천명의 참석자들이 한꺼번에 만세를 외칠 때는 가슴이 뭉클하다"고 소개했다.

애향동지회는 지난 90년부터 지역 초·중학생들에게 100만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해오고 있으며 홀몸노인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세대에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영해 3·1의거탑 비문에는 '영해를 중심한 축산, 창수, 병곡면 수만 군중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외쳤던 만세 소리는 동해의 파도보다도 더 높았었다' 고 전하고 있다.

영해 애향동지회 회원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3·1절 만세 재현행사를 통해 더욱 파도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퍼지기를 기대 한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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