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꽃님이'상임이에게
꽃님아, 넌 엄마를 보고 있겠구나. 슬퍼하기에는 너무 믿을 수가 없고 인정하기에는 너와의 끈을 놓을 수가 없구나. 하루아침에 흔적조차 없으니, 니가 너무나 그립구나.
꽃님아, 그렇게도 너에게는 삶이 무겁더냐. 고작 그것을 살다 가기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단 말이냐. 너무나 엄마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던 너. 엄마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준 너. 꽃님이가 있기에 엄마가 존재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단다.
대학생이 되어 꿈을 펼쳐 보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너. 너의 모습이 아른거려 이 엄마는 미칠 것 같구나.
꽃님아, 엄마는 어떡하니. 널 위해 살 기회도 주지않고, 이렇게 끈을 놓아 버리면 엄마는 어떡하니. 힘들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한 내딸 꽃님아 미안하구나.
정말 널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구나. 너의 어깨에 무거운 짐 이제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하늘 나라에서 마음껏 자유로이 꿈을 펼쳐 보려무나.
니가 입고 싶어하던 주름치마도 입고 학생들 앞에서 지도하는 예쁜 선생님으로 살아 보려무나. 노란색 프리지어 꽃을 좋아하던 꽃님아! 프리지어는 다시 피었건만 넌 어디 있니. 어찌 흰 국화꽃을 놓아야 한단 말이냐. 올해는 너에게 노란 프리지어를 사줄 수가 없구나. 먼저가서 기다려. 엄마 못다 한 짐을 내려놓으면 프리지어 들고 갈게.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우리 가족들 잊고 자유로워라.
사랑한다! 꽃님아. 사랑해. 내딸 꽃님아!
2003년 2월. 엄마가
-어머니 황명애씨가 꽃님이 한상임(19)양을 그리며 보낸 마지막 편지
▨동생 혜영이에게
혜영아!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지? 언니는 처음에 혜영이가 그 지하철 속에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는데. TV에서 네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검게 탄 전동차를 보고 많이 울었단다.
얼마나 아팠을까. 괴로웠을까.
언니는 아직도 혜영이 눈·코·입이 하나 하나 다 생각나는데, 그 자그마한 몸과 얼굴이 그 속에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슬퍼만 진다.
놀러가면 애교스럽게 반겨주던 혜영이. 지금도 가면 언니 반겨줄 것 같고 "언니야, 나랑 패션디자이너 하자"던 귀여운 목소리도 생각난다.
하지만 혜영아. 이제 우리 슬퍼하지 않을테니까 너도 가뿐한 마음으로 좋은 곳에 가렴. 거기서 엄마, 아빠, 진영이, 친구들 생각 나더라도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지내렴. 이다음에 언니도 하늘나라 가게 되면 보고 싶은 혜영이 가장 먼저 만날거야. 그때까지 하늘에서 건강하고 행복해야 돼. 많이 보고 싶을거야. 그럼 안녕.
-진희 언니가 실종된 박혜영(14·영천시 금호읍)을 찾으며…
▨어머니 찾아헤맨 하루
◇2월25일 눈을 뜨며….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눈물도 마르고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한평생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사셨는데 난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너무 죄송하다.
아직도 지하철안에서 부르짖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석달후면 그렇게 기다리던 손주도 안아보지 못하고 자식으로서 한평생 한이 될 것 같은데…. 불쌍한 어머니. 제발 어머니 시신이라도, 영혼이라도 편히 가게 했으면 좋으련만….
이 나라가 원망스럽다.
어머니를 저렇게 비참하게 보내고 이제는 그 영혼까지 비참하게 보내려고 한다.
우리 가족, 여기 있는 모든 가족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죄인처럼 되어야 하나. 답답하다.
◇25일 오전 11시
이제 서서히 혼자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벌써 사람들의 뇌리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것인가? 지하철 밖을 보았다.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 그 자체가 너무 부럽다.
나의 행복. 이 모든 것들…. 이제 사치로만 느껴진다.
◇25일 오전 11시35분
중앙로역. 아직도 연기 냄새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스티로폼에 담요 한장으로 새우잠을 자고 있다.
처리반이라는 사람들이 현장 훼손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경찰이 지키는게 아니라 훼손할까봐 유가족이 직접 지키고 있다.
어머니를 확인하기 위해 일주일을 뛰어 다녔지만 별 소득이 없다.
나라에서 정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25일 오후 3시
새벽에 술취한 대책본부 국장이라는 사람이 우리 유가족에게 "뭐하는 놈들이냐"고 술주정을 했다.
나 아니, 우리는 누구일까? 죄인처럼, 데모꾼인양, 버려진 거지처럼….
◇25일 오후 4시
그래도 주위엔 따뜻한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이들의 반만큼이나 나라에서, 책임기관에서 관심과 성의를 보여준다면…. 지금 따뜻한 죽 한그릇을 손에 들고 있다.
어머니가 지켜보신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죽 한숟가락이 모래알처럼 느껴진다.
주위에 많은 분들이 오셨다.
얼마나 참혹한지 진심으로 오신 분도 있고, 그냥 놀기삼아 오신 분들도 있다.
조금전에 실종자를 위한 서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말씀하시길 "당신들 돈때문에 하는거 아니냐. 나라에서 시체가 있어야 된다는데…" 그냥 가시지…. 마음이 찢어진다.
-김희수(32)씨가 실종된 어머니 권정분(54·상주시 신봉동)씨를 찾아 헤매며 25일 하루동안 느낀 심정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일기.
▨담임선생님이 김철군에게
생각만 해도 슬프고 안타까운데 이렇게 철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니 사고가 더욱 믿기지 않습니다.
철이는 홀어머니와 동생 둘과 함께 힘들게 살았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학생이었습니다.
올해 입학하는 경상공고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정말 열심히 잘 해볼거라고 말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일년 동안 급식당번과 분리수거를 담당하면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 없이 해 온 것을 생각하니 새삼스레 철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리숙할 정도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숨기지 못하는 순진함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고 가정형편을 비관해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잘 극복해주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철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도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늘 말해오던 대로 이제야 정말 자신의 꿈을 펼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 줄 기회가 왔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는 따뜻하고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심중 3학년 9반 이영주선생님이 제자 김철군을 생각하며
▨후배 배소현에게
보고 싶은 소현(발비나)아!
안심 공영 주차장에 세워 둔 네 차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학원에 빠지고 다른 데에 놀러가 차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하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해맑게 웃던 네 모습, 아이들 앞에서 성가를 가르치고 율동을 가르치던 네 모습 눈에 선한데 우리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한 너. 좀더 잘해주지 못하고 좀더 배려해주지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지난 주일 학생 미사에서 항상 네가 앉아 있던 곳을 생각하며 한 없는 눈물만 흘렸다.
네가 있어야 할 그 자리. 성가를 부르며 네가 화음을 넣던 부분에서는 네 목소리가 참 그립더구나. 아이들과 교사 모두 너를 잃은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겨울 신앙학교를 마친 뒤 모인 자리에서 엉엉 울던 네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편입 준비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넌 눈물을 그칠 줄 몰랐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살아있음이 미안할 따름이다.
하늘나라에 천사가 모자랐거나 율동이랑 성가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게 착하고 예쁜 너를 하느님이 빨리 데려가셨나보다.
신부님이 꿈에서 너 보았대. 좋은 곳에 있는 것 같다고. 우리 모두 그렇게 믿는다.
이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너의 죽음으로 인해 언니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데 얼마나 게을리했는 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네 몫까지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과 다른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게.
하늘나라에서 행복하렴. 사랑해. 소현아 그리고 미안해!
-이은영(데레사·영천성당 주일학교 교사)씨가 실종된 후배 배소현(20·영천시 야사동)씨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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