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 구룡포. 지금은 허울뿐인 명성 뒤로 어두운 그늘만 짙게 깔려 있다.
"구룡포의 명성은 옛날 이야기지 어민들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어쩔 수 없이 조업에 나선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41t짜리 대게잡이 선주 김경호(62)씨의 하소연이었다.
대게잡이는 이제 고사위기에 내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값싼 러시아산 수입대게가 물밀듯 들어오기 때문이다.
국내로 수입된 러시아산 대게가 2001년 1천700여t에서 작년에는 9천500여t으로 늘어나 구룡포 어민들이 어획한 1천t의 무려 9배에 달했다.
여기다 밀수입되는 대게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엄청나다.
마리당 2천, 3천원대에 수입되는 러시아산 대게와 가격경쟁력에서 도저히 상대가 안돼 국산 대게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격하락도 어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2001년 대게 대품이 kg당 4만4천원대에 위판됐으나 작년 같은 기간에는 36%가 떨어진 2만8천원대에 머물렀다.
소비자들이 비싼 국산 대게보다는 오히려 값싼 러시아산 대게를 선호하고 있는 것도 어민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부분이다.
"소비자들이 러시아산 대게를 구입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맛은 차치하고라도 가격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국산 대게를 사주십시오'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김씨의 안타까움은 계속됐다.
"일본처럼 정부에서 수입대게 물량을 조절해 주거나 대게 성어기때만이라도 수입을 규제해 준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결국 수입업자 배만 불리고 생산자는 쫄쫄 굶는 꼴"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작년까지 35척에 달했던 구룡포 대게잡이 어선이 지금은 28척으로 줄었으며 그 중에서도 8척은 올해안으로 매각되거나 채낚기 등으로 업종을 전환할 계획이다.
선주들은 1항차(일주일 조업)에 평균 800만~900만원의 경비가 소요되는데 생산고는 1천200만원대에 그쳐 임금 제하고 나면 돌아올 몫이 거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때 구룡포 수산업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던 대게잡이가 이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서자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게와 함께 구룡포어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오징어 채낚기어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0년대 8kg 1팬(20~25마리)에 2만원대를 형성하던 것이 작년말에는 1만원대로 절반이나 하락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비해 단가는 더 떨어진 것이다.
그나마 시설자동화와 선원감축으로 운영해 손실을 보전했으나 이젠 더 이상 비용을 줄일 만한 건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100t급 채낚기 2척을 소유한 허남율(52) 선주는 "한일어업협정 후 채낚기선이 대폭 감축되면서 큰 손실을 입지 않았지만 가격이 오르지 않아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해안 지역 전체 200여척에 달했던 100t급 채낚기선이 감척과 매각 등으로 크게 줄어들어 현재 70여척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감축 때문에 어선수가 줄면서 경쟁이 완화된 탓에 살아남은(?) 어선들이 겨우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어장환경 변화도 어민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해안 수온변화와 한일어업협정 후 어장이 축소되면서 오징어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채낚기선들은 연안어장 고갈로 오징어를 찾아 비싼 입어료를 지불해가며 러시아 수역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지난 99년 한일어업협정 이후 새어장 개척 차원에서 러시아 수역에 1천200만~1천300만원의 입어료를 지불하며 조업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1년에 두달만 조업이 가능하다.
주로 냉동오징어를 취급하는 구룡포선주협회 연규식(43) 회장은 "대체어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원양개척을 하려고 해도 구룡포에는 원양으로 갈만한 규모의 배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는 또 "선친의 가업을 이어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어업에 뛰어들었지만 갈수록 막막할 뿐이다"며 "어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아직 묘책이 없다"고 말했다.
활오징어를 주어획으로 하는 근해채낚기도 해마다 생산고가 5천만~6천만원정도 하락하고 있어 전망이 어두운 편이다.
오징어라도 많이 잡힌다면 그나마 물량으로라도 버틸 수 있을텐데 이미 연안수역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수역의 자원은 사정이 좀 나아 어한기 때 일본 수역에서 복어나 한치라도 잡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일본측의 규제가 올해들어 더욱 까다로워지면서 입어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근해채낚기선주협회 전석암(50) 부회장은 "재작년은 1년 어획고가 평균 3억원으로 가까스로 현상유지가 됐지만 작년에는 1억~2억원대로 떨어져 큰 타격을 입었다"며"출어가 곧 손실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근해채낚기는 경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선주가 선장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소한 선장의 임금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룡포 어업이 너나없이 위기에 처해 있지만 구룡포지역 다방은 오히려 30여곳으로 예전보다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방종업원 김모(27)양은 "경기가 좋아서 다방이 늘어난 게 아니라 상심한 어민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다방이나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화도 풀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다방에는 한낮에도 손님이 많았으며 또 사무실마다 어민들이 모여서 화투를 치거나 배달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위기에 빠진 구룡포어업이 옛명성을 되찾는 방법은 없을까? 어민들은 이에 대해 한목소리로 "면세유와 영어자금지원을 지속해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대안"이라고 했다.
출어경비 가운데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수산보조금에 대해 규제대상 보조금을 지원가능한 보조금으로 전환하는 등 범위를 최소화하고 충분한 유예기간을 설정해 어민피해를 최소화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일수협 문상우 전무는 "영어자금 등 공식적인 어민지원은 국제규제상 이제 어려워진 만큼 어민을 위한 기금을 확보해 어민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어민들이 기금확보에 적극 나선다면 지원중단이라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호미곶 등 주변 관광지 등과 연계해 구룡포의 아름다운 풍광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면 어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항을 단순한 수산물 생산유통 기능에서 탈피해 국내외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요휴무제 등으로 인한 도시근로자들을 위한 휴양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어촌관광과 함께 이들에게 수산물을 직판할 수 있어 수산물 판매의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다.
부경대 지삼업 교수는 "어촌내 폐교시설 일부를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청소년해양스포츠체험수련장'을 설치,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구룡포는 입지여건상 주변과 연계한 관광어촌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정부지원이 뒷받침되면 '잡는 어업에서 관광과 휴양을 겸한 어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정부와 포항시, 어민단체, 시민들이 나서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 구룡포의 옛 명성을 되찾을 날을 기대한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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