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살이 내리면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참사현장에는 애도의 촛불이 밝혀진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웃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못내 가슴아파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 작은 촛불 하나씩 켜들고 경건히 고개숙인 모습,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들을 보면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 그래도 아직은 선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001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전대미문의 비행기 테러사건으로 녹아내린 후 사고현장에는 죄없이 죽어간 수천 명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촛불이 꽃밭처럼 환히 밝혀졌었다.
건물잔해가 철거된 뒤 나타난 깊게 팬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미국민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슬픔의 상흔으로 남아있다.
지난 1996년 페루 안데스 산맥의 해발 6천700m 유야이야코 산 정상에서 잉카시대의 미라가 발견됐다.
망토를 두른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 소녀미라는 당시 원시신앙의 제물로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명 '얼음소녀'로 불리며 전세계인들로부터 애틋한 동정을 받았다.
옛 잉카에서는 지진이나 전염병 가뭄 등 재앙이 닥쳤을 때 산신이나 태양신에게 사람을 산제물로 바쳤었다.
이에 관한 슬픈 전설도 전해져 온다.
탄다 카휴아라는 아름다운 10세 소녀가 종교의식의 제물로 희생된 뒤 여신이 됐다고 한다.
소녀는 죽으면서 제물로서는 자신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아직도 매캐한 연기냄새가 가시지 않은 중앙로역. 검게 타버린 벽면에 어지럽게 남아있는 누군가의 손톱자국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에게 한다.
문득 얼음으로 뒤덮인 산 꼭대기에서 극한의 공포 속에 숨져갔을 어린 소녀의 미라가 겹쳐짐은 왜일까. 어쩌면 그날의 희생자들은 지금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친구와 담소하며 웃는 우리들 대신 이 부실투성이 사회의 제물이 된 것은 아닐는지. 오늘도 중앙로역에는 또다시 촛불이 켜질 것이다.
누군가 '촛불은 타는 물'이라고 했다지만 중앙로역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다름아닌 '타는 눈물'이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힌다.
거룩한 자기희생의 이름이다.
그 희생을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 그것은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이리라. 중앙로역은 우리의 깊고 예리한 상처이자 결코 지울 수 없는 그라운드 제로이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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