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따라 세월따라-애가 애 키우던 큰 누나

입력 2003-02-25 09:57:28

"누나 잘 가. 그리고 누나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다음엔 꼭 누나를 영원히 지켜줄게…. 안녕…".

"형! 다음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 스타 한판 해야돼. 그땐 꼭 이길거야…. 형 어디 있는거야. 너무 보고 싶어…".

"딸아, 내 딸아. 부디 좋은 세상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추모 게시판의 글들이다.

지하철 사고로 희생된 가족에 대한 애달픈 사연들이 눈시울을 젖게 한다.

글씨도 비뚤비뚤하고, 맞춤법도 틀리지만 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가슴 찌릿하게 한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 이토록 그립고, 가슴 저미는 말이 있을까.

30여년 전 이 한장의 사진에도 가족애가 그대로 묻어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부모님이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면 큰누나가 집안을 챙겼다.

코흘리개부터 기저귀를 찬 막내까지, 보통 네댓 명은 됐다.

연탄불에 양은 냄비를 올려 누런 보리밥을 짓고, 비지로 찌개도 끓였다.

싸구려 호마이카 상에 비집고 앉아 게눈 감추듯 누나가 차린 밥을 먹었다.

냄비 뚜껑을 열면 찌개의 김이 좁은 방을 가득 채웠고, 피어오르는 김 뒤로 환하게 웃는 동생들의 얼굴에 누나는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70년대 초 대구 두류공원이다.

일명 '궁뎅이' 산으로 유명했던 두류산. 배추밭이 유난히 많아, 거름냄새가 진동했던 곳이다.

칭얼대는 동생을 업은 '두 누나'가 산책 중이다.

10살이나 됐을까. '애가 애 키운다'는 옛 이야기대로다.

아기 포대기가 땅에 닿을 정도다.

매서운 바람에도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막내를 재우느라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는 노래도 부르고, 돌을 주워 공기놀이도 했을 것이다.

해거름에 집에 오면 동생들이 또 앙앙댄다.

"누나! 밥줘". 아직 부모님이 오시려면 멀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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