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신주와 타이난 과학단지를 둘러보고 귀국하는 발길은 무거웠다.
그들은 혁신과 첨단 뉴비즈니스 창출의 구심점으로서 과학단지(=테크노파크)를 총체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너무나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사고에 빠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산업자원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테크노파크'와 재경부의 '경제특구', 과기부의 '과학특구', 교육부의 '산학협력단', 지방정부들이 주장하는 '테크노폴리스' 등은 모두 동일 개념이다.
단지 추진 주체가 정부 각 부처와 지방정부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부처이기주의가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신주와 타이난에서 그곳은 '산업특구'이자 '경제특구'이고 '과학특구'이며, '교육특구'와 '문화특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우리의 테크노파크(=테크노폴리스)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경우 타이완처럼 특정지역을 국가 총체적 차원에서 집중 지원해 육성하기는 쉽지 않다.
관료중심의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엄청난 난제일 뿐더러 지자체마다 내세우는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무작정 국가적 효율성만 강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지방시대를 역설하는 새 정부의 국정지표와도 부합한다.
그동안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문광부, 중기청 등 중앙부처별로 진행되는 비슷비슷한 각종 사업들이 얼마나 지역에서 중구난방식으로 펼쳐졌었는지 돌이켜보자. 여기에다 지방정부까지 혼란에 한몫 거든 것이 현실이다.
테크노파크와 관련된 부분만 보더라도 혼란상은 두드러진다.
각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산·학·연 컨소시엄센터,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대학의 각종 연구센터 등 모두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가졌음에도 서로간의 역할분담이나 협력 네트워크는 '말'로만 존재해 왔다.
테크노파크와 창업보육센터,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의 업무 중 40% 이상이 서로 중복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부처의 사업을 단순히 지역에서 집행하기만 했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점들이다.
무엇보다 시·도 등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완전한 '서비스맨'으로 거듭나는 것이 시급하다.
중앙정부의 사업을 지역에서 집행하는 데 지방정부 공무원에게 큰 권한이 있을 리가 없다.
예산과 권한 타령만하는 구태를 버리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지역기업 등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중앙부처의 사업들이 지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지역의 사업추진 주체와 중앙부처 간 '중간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같은 예산으로 타 지역 보다 훨씬 효과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자체의 경쟁력이다.
행정구역의 벽을 뛰어넘는 것도 성공적 테크노폴리스를 위한 필수사항이다.
경산에 위치한 경북테크노파크의 핵심역량은 금형을 비롯한 기계공학 분야인데 대구의 최대 주종산업이 바로 기계·부품산업(대구 광공업생산의 40.2%〈섬유 32.6%〉)이다.
그렇다면 대구시는 대구의 기계·부품 업체들이 경북테크노파크와 협력 네트워크를 갖춤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IT(정보기술) 분야의 핵심역량을 갖춘 대구테크노파크는 금오공대와 구미, 왜관 등지의 IT관련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맺어야 한다.
경제권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생활권을 따라 형성된다.
관료의 의식만이 행정구역에 얽매여 맴돌 뿐이다.
대구/경북 테크노폴리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또 새로운 두뇌의 유입이 필요하다.
대구와 경북은 경북대, 영남대, 포항공대를 비롯, 50여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 종사하는 교수, 연구원과 배출되는 인력의 잠재역량은 엄청날 것이다.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원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현재 대구·경북은 침체해 있다.
새로운 두뇌집단(연구기관)을 끌어들여 지역대학의 두뇌들을 깨워 생산성 있는 지식을 창출해 내도록 자극해 산·학·연간 실질적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테크노폴리스의 기본 요건이다.
신주와 타이난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지식경제 시대의 경쟁력은 고급두뇌에서 오고, 국내외에서 이들을 유치하려면 외국인학교를 비롯한 최고수준의 교육인프라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신주의 국가실험고급중학과 같은 특별한 교육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테크노폴리스 계획은 성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의 이공계 교육과 지역 기업인의 수준 및 기업문화를 지식경제 시대에 어울리게 끌어올리는 일도 남은 과제다.
지식경제 시대의 경쟁력은 테크닉이 아니라 창의력에서 온다.
이공계 중심 대학인 신주 지아오통대의 도서관은 미술관으로 착각할 정도로 예술품을 순회 전시하고 있었다.
예술만큼 창의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해 사무실과 공장을 정원으로 꾸며놓고, 건물내에 갤러리을 만든 신주 '액톤'사의 황 안 지엔 대표나, 인수합병된 일본인 직원을 위해 '타이완의 역사'란 역사책을 직접 쓴 타이난의 '치 메이'사 대표 등은 지식경제 시대 CEO(최고경영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테크노폴리스는 단순한 첨단기업 유치와 지원 정책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에 맞는 행정조직과 우수 두뇌집단의 유입에 따른 지식창출 메커니즘의 활성화, 혁신적 교육제도, 창조적 기업문화 등이 함께 어울어져 완성되는 우리의 미래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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