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와 관련해 신고된 실종자 숫자가 370명을 넘고 있으나 신원 미확인 사체는 80구 전후에 불과, 상당수 실종자는 사체 자체가 심하게 불 타 이미 상실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이번 사건에서는 실종자 문제 해결이 앞으로의 가장 심각한 과제 중 하나로 부상할 전망이다.
사고 수습대책본부는 신고된 실종자 수가 21일 오전 현재 370명을 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일까지 발견된 사체는 수습사체 54구와 전동차 안의 미수습 사체 80여구 등 많아야 140여구 정도이며, 그 중 90여구의 신원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고된 실종자 숫자와 사체 숫자가 이같이 큰 차이를 보이는데 대해 대책본부 측은 2중 신고자와 다른 시도민 신고가 많은데도 검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큰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가 들어오면 사고 관련 가능성 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일단 접수를 받아 줌으로써 신고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경찰은 대책본부와 달리 실제일 가능성이 있는 실종자를 160여명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실종자 가족들은 "자체 조사 결과 그 수가 2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대구지하철공사 운수팀이 사고 당일과 같은 요일.시간대의 혼잡도를 조사해 2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고 전동차에는 410여명이 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확인된 피해자(신원 판명 사망자 및 부상자) 200여명을 제하더라도 200여명이 남는 것으로 판단됐다. 운수팀은 당시 안심행 1079호 전동차에 225명, 대곡행 1080호 전동차에 185명 등이 탔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사고 당일 후불제카드로 지하철을 탐으로써 승객의 신원이 드러난 승객 중 상당수의 체크아웃 기록이 없다는 주장도 나와 실종자가 남은 사체 숫자보다 많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대로 승객 중 상당수가 탈출해 승객 희생자가 승객 전체 숫자보다 적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으나, 실종자 가족들은 "410명의 승객 중 일부가 탈출했다 하더라도 승객 외에 최소 100여명의 역무원.통행인.상가근무자 등이 별도로 피해 범위에 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결국엔 200여명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비승객 피해는 지하 2층에서 근무하던 청소인부 3명이 숨진 것으로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신고된 실종자의 대부분이 실제 희생자로 판명된 전례도 이번 실종자 문제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5년 6월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경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고된 실종자 109명 중 105명이 실제 희생자로 판명됐으며, 2001년 미국 9.11 테러 때 실종자로 신고됐던 1천455명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는 것.
이때문에 실종자 가족들과 상당수 시민들은 신고된 실종자 중 대다수가 이번 사고의 실제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정밀한 감식을 요구하고 있다. 사고 당시 중앙로역 플랫폼이 거대한 불 가마로 변하면서 승객들의 사체가 완전 연소된데다 엄청난 양의 진화용 물이 분사됨으로써 그 재가 떠내려 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한 전문가는 "2시간이면 완료되는 화장 때도 사체가 대부분 잿가루로 변하고 남는 일부 뼈도 지름 2, 3cm의 부서지기 쉬운 조각으로 변한다"며, "이번 사건 때는 전동차 철구조물까지 녹힐 정도의 불이 3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에대해 경북대 법의학팀 곽정식 교수는 "화장된 유골의 재로는 유전자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해, 대구지하철 실종자 문제는 해결의 고리조차 찾기 쉽잖을 전망이다.
◈ 현장모습
월배 차량기지로 옮겨진 사고 전동차 내부는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20일 국립수사연구소 요원 등 신원확인팀을 따라 객차 내부로 들어가던 실종자 유가족들은 충격에 쓰러질 듯했다.
◇처참한 현장 = 실종자 가족 대표 4명은 20일 오후 4시쯤 차량기지 주공장으로 들어섰다. 70구 이상의 사체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080호 전동차가 있는 곳. 차체 감식을 위해 전날 높히 들어 올려져 있던 전동차가 이날은 레일 위로 내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레일 위 곳곳엔 객차에서 흘러내린 물질들이 붙어 있었다.
주공장 셔터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30여m 앞에 있는 전동차로부터 심한 악취가 확 덮쳐왔다. 목이 매캐할 정도. 실종자 가족 최원일(41)씨가 아버지 생각에 울컥 치미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가족 대표들은 6호 전동차의 뜯겨진 문으로 들어섰다. 그 앞의 광경은 참혹 그 자체. 바닥에는 재와 타다 남은 석면이 수북해 밟는 느낌이 꼭 눈을 밟는 것 같았다. 벽에는 녹아내린 온갖 물질들이 늘어붙어 있었다. 문은 닫히고 유리창은 모두 깨진 상태.
정확한 유골의 개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개골, 목뼈, 갈비뼈 등 유골과 시신 잔해가 잿더미 속에 반쯤씩 묻혀 있었다. 의자에 누운 상태인 한 시신은 하얗게 전소돼 있었다. 많은 시신들은 검게 그을렸고 두꺼운 점퍼를 입었던 어떤 시신의 등 부분에는 천 조각이 눌러붙어 있었다. 옷가지가 뼈에 눌러 붙은 유골도 있었다.
시신들은 출입문 쪽으로 몰려 있었다. 한 가족은 "불 탄 닭장 같다"며 목이 메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주공장에 머문 시간은 40여분. 그러나 객차 안을 둘러볼 수 있었던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신원 확인할 수 있을까? = 실종자 가족 김문철(45)씨는 "시신들 상태가 참혹하지만 잿가루 상태는 아니다"고 했다.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마지막 희망을 봤다는 것. 김씨는 사고 때 "연기가 너무 많아 숨이 막힌다"는 아내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던 사람이었다.
이들 가족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신원확인팀의 시신 분류 작업이 한창이던 때. 확인팀은 그에 앞서 객차 내부와 유해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 화면을 보면서 작업 대책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내려진 판단은, 시신 수습에만 5일 이상 걸리고 실제 감식에는 당초보다 긴 석달 이상의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신 감식은 21일 시작됐다.
◇확인팀의 계획 = 과학수사연구소 감식팀, 경북대 법의학팀, 대검 감식반 등의 이곳 현지 요원 30여명은 20일 늦도록 우선 전동차 안의 유골 분류작업에 매달렸다.
이날 확인팀은 1080호 전동차 6호차에서부터 작업을 시작, 객차 안을 60cm 간격의 여러개 섹터로 나눠 좌표를 정하고 유골에 번호를 붙였다. 그러나 유골 대부분이 엉켜있고 훼손이 심해 X레이 투시기로 시신.유골의 현재 위치와 상태를 먼저 점검.확인할 예정.
확인팀은 분류작업이 끝난 유골부터 부패를 막기 위해 냉동 처리하면서 그 자리에서 유전자를 채취할 계획이다. 당초엔 외부로 옮겨갈 계획이었으나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 또 훼손이 심해 유전자 채취가 불가능한 시신에 대해서는 안면복원술 등 첨단기법을 동원할 방침이라고 했다.
21일부터는 국과수 20여명, 경북대 법의학팀 7명 등 확인팀이 추가 보강될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쯤 사체 숫자 확인될까? = 신원확인팀 관계자는 "일단은 시신이 70여구 되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구체적인 사망자 수는 21일 오후나 돼야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이번 주 내로 시신 수습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이 작업에만도 5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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